"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어릴 적 누구나 해 봤을 이 연상 놀이는 학생들에게 비유의 원리를 설명하는 데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김동명의 시에 나오는 '내 마음은 호수요'라는 비유가 성립할 수 있는 것은 원숭이 엉덩이와 사과 사이에 '빨갛다'는 연상의 고리가 있듯, '내 마음'과 '호수' 사이에도 '잔잔하다, 평온하다, 포용할 수 있다, 맑다'와 같은 연상의 고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 연상의 고리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어야 성립할 수 있다. 만약 누군가 호수에서 '썩다, 둑이 터지다'와 같은 것을 연상해서 '내 마음은 호수다'라고 한다면 인정을 받지 못하는 비유가 된다.
그런데 이 연상 놀이에서 흥미로운 것은 '사과는 맛있어' 다음에 '맛있는 건 바나나'가 온다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에게 맛있는 걸 떠올리라고 했을 때 바로 바나나를 떠올리는 아이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그리고 지금 남녀노소를 대상으로 맛있는 것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을 조사한다고 하면 30% 이상 동의하는 음식이 과연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요즘 직장에서 모두가 좋아하는 회식이 없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맛있는 건 바나나'가 통용되는 것은 이 연상 놀이가 생각보다 긴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릴 적 시골 촌놈들에게 바나나는 '용, 봉황, 마법' 등과 같은 반열에 있는 말이었다. 말은 있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그런 음식이었다. 나는 죽기 전에 그런 천상의 음식을 먹어 볼 수 있을까 하고 생각을 했었는데, 어느 날 기적이 일어났다. 일본에 살았던 소나미(어른들이 그렇게 발음했는데 정확히는 스나미였을 것이다.) 아재가 명절날 한국에 오면서 바나나를 가지고 온 것이었다. 큰 솥에 푹 삶아서 차례상에 올린 바나나를 보면서 음복할 때를 기다리던 시간이 왜 그렇게 긴지 몰랐다. 차례를 마치고 막상 삶은 바나나를 먹어 보니 삶은 고구마 비슷한 맛이 나는데 기대했던 것만큼 맛있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내가 먹은 바나나가 얼마만큼 맛있었는지 말로 설명을 했고, 친구들은 군침을 삼키며 경청을 했었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에서는 '맛있는 건 바나나'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이제 바나나 자리에 피자, 치킨, 불고기, 탕수육 등등의 음식을 넣는다 해도 그것은 개인의 취향일 뿐 모두가 동의하기는 어렵다. 모두가 둘러앉아 바나나의 맛 이야기를 듣던 그 시절, 맛있는 건 바나나라는 것에 모두가 동의하던 그 시절, '바나나는 길어'라고 해놓고 약간은 음란한 상상을 하며 야릇한 미소를 주고받던 그 시절들은 생각해 보면 게오르그 루카치가 쓴 「소설의 이론」의 제일 앞에서 말한 '창공에는 별이 있었고, 별빛이 길을 밝혀주던' 그런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능인고 교사·chamt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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