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국민들은 평가를 다 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싼 여야 정쟁이 그야말로 이전투구를 넘어선 나라 망신 사생결단이다. 한국갤럽의 조사 결과 지난 2007년 10월 퇴임 5개월을 앞둔 시기에 방북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대화하면서 NLL을 '괴물 같다' '바꿔야 한다'느니 언급한 고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NLL 포기는 아니다'고 보는 응답자가 53%나 된다.
정치권 일각에서 "아무리 표로 당선된 대통령이지만 60년째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젊은이들이 피로 지킨 NLL을 괴물로 여기는 것은 국기 문란 행위이다" 내지 "실질적으로 양보하려고 했던 것 아니냐"고 언성을 높이지만, 국민들은 그보다 더 낮은 강도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발언의 적절성에 대한 국민 생각은 좀 더 엄정하다. 과반 이상이 고 노무현 대통령의 NLL 발언이 부적절하다고 응답했다. 여야의 NLL 입장에 대한 국민 판정은 피장파장, 장군멍군인 셈이다. NLL 대화록을 둘러싸고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데 대해 한국갤럽이 이달 초에 여론조사를 한 결과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각각 8%씩 지지도가 떨어졌고, NLL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외교 안보에 주력한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가장 높은 63%의 지지를 받고 있다. 7월 초 지지도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그것과 맞먹는다.
판도라의 상자인 대화록 원본이 공개된들 여야가 유리한 대목만 골라서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려 들 것은 명약관화하다. 노무현 김정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NLL이 거론된 것이 확인된 이상, 이 문제가 불거지게 된 본질을 보려는 노력도 한 번쯤은 필요하다. 이는 곧 신성불가침처럼 여겨지는 민주 정권 10년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로 연결된다.
이 시기 자유와 평등에 대한 국민 인식은 크게 높아졌다. 그러나 이 시기 진행된 대북 화해 정책이 결국 지금의 북핵으로 돌아온 현실적 역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민주 정권 10년 동안 중국의 2배 규모로 북한을 지원한 대한민국이 결과적으로 머리에 핵을 이고 살게 된 모순에 대한 각성이 필요하다. 그래야 국민은 김대중 세력이든, 노무현계든 야당을 더 신뢰할 수 있다.
민주화 세력은 대북 포용 정책에 대해서 누구든지 토를 달면 반발하고 거의 적대시한다. 하지만 국민은 실컷 퍼주었더니, 북핵 부메랑으로 돌아온 현실에 대한 설명을 요구한다. 국정원 대화록 관련 위법한 일을 저지른 사람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법에 따라 처리하면 되고, 이번 기회에 국정원도 국내 선거판을 기웃거리지 말고 철저하게 독립된 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
지금 한반도에는 변화의 기류가 일고 있다. 지난 5월 이후 한미, 미중, 한중이 연이어 정상회담을 열면서 북핵 문제에 대한 해법을 구하고, 북핵 불용 내지 한반도 비핵화에 일치된 입장을 보였다. 물론 여성으로서 감성, 문화, 역사, 경험에서 우러난 연설로 미국과 중국을 감동시킨 박근혜 대통령의 능력도 있겠으나 오바마와 시진핑 간 체스판에서 한반도에 관한 상당한 합의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물밑 얘기도 떠돌고 있다.
아편전쟁 전까지만 해도 세계 부의 3분의 1을 생산하다가 지난 약 200년간 서구 열강에게 빼앗겨버린 지위를 되찾으려는 13억 5천만 명이 꿈꾸는 중국몽, 전 세계 약 70억 인구 가운데 가장 똑똑한 이들을 빨아들여 아메리칸 드림을 구현하고, 다시 아시아로 돌아오는(pivot to Asia) 미국몽, 그리고 이 중국몽과 미국몽이 부딪치는 동북아의 한반도에서 국민 행복 시대를 열려는 한국몽 사이에 우리는 서 있다.
지금과 같은 경제성장으로는 어림도 없다. 창조경제를 바탕으로 큰 폭의 성장을 이끌어내고, G2와 절묘하게 줄타기 곡예를 펴야 한다. 너무 서쪽으로 서면 한미동맹이 위협받고, 지나친 미국 의존은 중국과의 정열경열(政熱經熱)이 무너진다. 물론 한반도 통일이 짧은 시기, 우리가 원하는 방향대로 가지는 않겠지만 북한이 위험한 핵 게임을 함으로써 동북아 평화 질서의 판을 깨뜨리는 것은 모두가 반대하고 있다.
이제 NLL은 어지간히 알 만큼 다 알았다. 더 이상의 NLL 논란을 국민들은 원치 않는다. 한반도를 둘러싼 큰 변화의 흐름을 정치권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400년 전 세종대왕기, 200년 전 영'정조기 이래로 국운 상승기라는 요즘, 여야가 한반도의 앞길을 제대로 짚어내는 데 성공해야 대한민국이 행복해진다. 어디 그런 정치인들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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