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처럼 동족 간에 끔찍한 전쟁을 벌이고도 70년이 다 되도록 아직도 그 전쟁을 상기하며 긴장 속에 살아가는 민족은 없다. 이렇게 적대적 분단이 고착된 이래 우리의 외교 역량은 늘 남북 분단에 집중되어 왔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내걸고 이제 서막을 열기 시작한 박근혜 외교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미국과 중국을 잇달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문제도 남북문제였다. 양국으로부터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지지도 얻어냈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다. 북한의 3차 핵실험은 개성공단 폐쇄로 이어졌다. 우리는 지금 남북대화를 마냥 설레는 가슴으로 대하던 시기를 지나서 냉정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이런 남북 관계의 이면에 미'중 양 대국의 이해가 버티고 있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한반도는 최근 '놓칠 수 없는 시장'으로 부상 중이지만 오랫동안 '뜨거운 감자'에 불과했다.
북핵 문제는 이미 장기화 조짐이 역력하다. 중국의 현실주의 외교 전문가 옌쉐이퉁 칭화대학 교수는 "북핵은 현실"이라고 주장한다. 미국 정부에서도 1차 핵실험 이래 북핵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듯한 언동을 일부 정보기관에서 보인 바 있다.
경제는 어떤가? 우리는 이미 IMF 재앙의 쓴맛을 보았다. 그 근저에 홍콩 반환을 둘러싼 미'중 양국의 뜨거운 금융전쟁이 깔려 있었고, 이에 무지했던 우리는 IMF의 이름으로 사실상 미국에 경제주권을 넘겨주었었다.
미국이 우리를 기어이 IMF에 끌고 간 배경에는 수교 5년 동안 급진전한 한'중경제의 밀착을 겨냥한 흔적도 없지 않다. 당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셉 스티글리츠 교수는 "한국은 남미 국가가 아니다"라고 미국 정부를 강하게 비난했다.
북한이 추진하는 경제개방에도 양 대국은 몹시 예민하다. 미국은 개성공단을, 중국은 황금평, 나진 선봉 경제특구를 여간 껄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다.
양국은 북한의 위아래를 나누어 주시한다. 지난 4월에도 미국은 개성공단에 대한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었다. 국무부의 전 아태 담당 차관보 커트 캠벨의 방한 연설을 통해서였다.
중국 정부도 신의주 개방을 겨냥해 반대를 노골화 한 적이 있으며 현재는 황금평 등을 계약으로 사실상 장악하고 있다.
양국은 남한 시장에 대한 관심도 경쟁적이다. 우리의 제1무역 파트너는 이미 미국에서 중국으로 바뀌었다. 이를 예견한 미국은 1980년대부터 한미 FTA를 설계해왔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한미 FTA에 대해 '동북아 전략의 일환'이라고 못 박았다.
중국시장에 인접한 남한시장에서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를 주시하던 중국은 한미 FTA가 마무리되자마자 한중 FTA 협상 개시를 이루어냈다. 중국 입장에서 한국과의 협력은 주요 발전 동력인 것이다.
왜 미'중 양국은 이처럼 남북한에서 주도권 경쟁과 미묘한 공조에 몰두하는가? 왜 남북은 적대적 대치의 음습한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가? 이런 종류의 의문은 한반도 분단과 미'중관계의 '역사적 틀'에 대한 우리의 얄팍한 현실 인식의 벽에 부딪히고 만다.
분단 이래 우리가 겪은 수많은 사건들 중에 이들 양국의 이해에 휘말리지 않았던 일은 거의 없다. 이제 그들은 G2시대를 열고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에서 최대의 공동 수혜국으로 부상했다.
그리고 수시로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계산을 짜 맞춘다. 그중에서도 한반도처럼 그들의 이해가 직접적이고 민감한 지역은 없다.
지금 중국은 '중국인들이 먹는 고기는 우리 미국에서는 개도 안 먹는다'는 비아냥도 목으로 넘기면서 미국을 붙잡는다. 미국의 위력에 대응하는 중국의 저력이다.
한반도는 양 대국에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 중요성은 이차적이고 부차적이다. 그들은 이미 40년 전 화해할 때 한반도를 '현상유지'로 묶어 놓고 악수하였다.
김대중정부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로 남북정상회담과 개성공단을 뚫었다. 박근혜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도 역사적인 성과를 기대해본다.
한광수/한광수중국연구소장
댓글 많은 뉴스
구미 '탄반 집회' 뜨거운 열기…전한길 "민주당, 삼족 멸할 범죄 저질러"
尹 대통령 탄핵재판 핵심축 무너져…탄핵 각하 주장 설득력 얻어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
이낙연 "'줄탄핵·줄기각' 이재명 책임…민주당 사과없이 뭉개는 것 문화돼"
尹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 임박…여의도 가득 메운 '탄핵 반대' 목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