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국회의원들의 갑 기득권 내려놓기

최근 10여 년간 정치권을 끊임없이 맴돌고 있지만 풀리지 않는 화두가 몇 가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방선거 정당공천 폐지와 지방분권이다. 둘 다 핵심은 중앙집권적인 통치 권력을 지방으로 나누어주자는 것이 간략한 골자다. 5'16 이후 군사정권 시절을 지나 지방자치가 회복된 지 20년이란 세월이 지났지만 획일적인 서울(중앙) 중심의 정치 권력 구조만은 여전히 변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란 가면(?)을 쓰고 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한국의 권력 구조는 OECD 국가 중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초강력 중앙 집중 국가다. 국가 예산의 80%를 중앙정부가 갖고 있고 행정 업무 중 중요한 것들은 모두 '국가 사무'란 이름으로 중앙정부가 갖고 있다.

지역 발전을 위해 '이런저런 것'을 해달라며 중앙정부에 건의하는 것과 중앙 부처에서 내려온 지시 사항을 이행하는 것을 제외하곤 지방정부가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지역의 미래를 준비할 각종 사업들은 국비 보조가 없으면 불가능하고 도시계획이나 SOC 사업의 큰 틀은 중앙정부의 가이드라인을 따라야 한다.

지방의 정치 구조도 똑같다. 4년마다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이란 명목으로 막대한 예산을 들여 지방선거를 하지만 결론은 항상 비슷하다. 영남은 기호 1번(새누리당), 호남은 2번(민주당), 수도권은 1번과 2번이 나누어 가지는 구조다.

'자기 지역을 주민들이 스스로 다스리는 것.'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지방자치'의 간단명료한 정의다. 하지만 왜곡된 한국의 정치 구조에서는 말 그대로 교과서에나 나오는 '공염불'이다.

하향식 공천이라는 현실의 벽에 지역을 위해 일할 수 있는 또는 지역을 위해 일해 온 이들은 출마나 당선의 기회를 갖기 쉽지 않다.

국회의원 공천은 중앙당에서, 단체장과 지방의원 공천은 국회의원이 하는 수직화된 공천 구조에서 사실 선거는 무의미하다. 지역색으로 구분된 여야가 대립을 하고 지역민들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단체장이나 지방의원 가릴 것 없이 선거 때면 특정 당 후보만을 지지하는 정치 구조가 20여 년째 이어져 오고 있다. 동네 정치, 지역 정치가 서울 권력에 휘둘려 온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를 한 번 해보자는 반성에서 지방선거 정당 공천 폐지론이 나오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여야 후보는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정당 공천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지난 10여 년간 국민들의 표심을 모아야 하는 대선이나 총선이 다가오면 여야는 어김없이 정치 개혁 특위 등을 만들고 이 문제를 논의했다. 왜곡된 정치 구조를 바꾸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항상 출발은 의욕적이었다. 그러나 결론은 아무것도 없었다.

여야가 '지방선거 공천 폐지'를 두고 당내 의견 수렴에 들어갔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공천 개혁 특위는 지난주 각각 '지방선거 보완점을 만든 뒤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공천을 폐지하자'는 의견을 지도부에 전달했다.

이제 결정은 갑의 권한(지방선거 공천권)을 스스로 내려놓아야 하는 국회의원들에게 달려 있다.

양당 모두 국민들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결론으로 다가서고 있다. 하지만 일부 국회의원들은 '지방 토호 당선으로 인한 토착 비리 우려' '정당 정치 왜곡' '금품 선거 재발' 등 갖가지 이유를 들며 격렬한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에게 묻고 싶다. 국회의원들이 지금껏 공천권을 행사한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들은 비리와 관련이 없었는지, 영남은 새누리당, 호남은 민주당이라는 일당 구조에서 정당 후보끼리 정책이나 공약으로 경쟁을 하는 선거 구조가 가능한지다. 또한 검은 거래가 없는 깨끗한 공천 과정이 제대로 실현돼 왔는지다.

선관위 자료에 따르면 2007년부터 3년간 전국적으로 치러진 단체장과 지방의원 재보궐 선거가 178건에 이르며 선거 비용은 500억 원을 넘어선다. 이 중 당선자의 금품 수수나 불법 행위로 인한 재보궐 선거가 60%를 넘어선다. 이들 대다수는 국회의원들이 공천권을 행사한 이들이다.

한국은 국민소득이 2만 달러가 넘고 OECD 국가 중 국민들의 평균 학력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다. 국회의원들이 공천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참신하고 능력 있는 이들이 지방정치에 등장하기 어렵다는 주장은 국민의 수준을 무시하는 태도다.

국회는 올 들어 '갑 횡포'를 막기 위한 각종 입법안 마련에 몰두하고 있다. 이에 앞서 국회의원들이 먼저 갑의 기득권을 내려놓을지 국민들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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