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밭 가운데서
한 남자가 일직선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적도를 따라 걸어가는 중입니다
왜 적도로 가느냐고 묻자,
전쟁이 끝나 우리가 만날 수 없을 때
부서진 건물 사이를 지나
너는 왼쪽으로 걸어
나는 오른쪽으로 걸을게
서로를 찾아 헤매다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다면
적도를 향해 걸어가자
지뢰밭 가운데서
한 여자가 적도를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시집『천국은 언제쯤 망가진 자들을 수거해가나』(창비, 2013)
지구를 굴러가는 것으로 본다면 우주 공간에도 바닥이 있겠다. 그 바닥에 닿는 면이 적도다. 바람은 북반구에서는 시계 반대방향으로, 남반구에서는 시계방향으로 불어간다. 적도에는 바람이 없다. 북반구와 남반구의 바람은 이곳에서 만나기도 전에 수직상승 후 제 갈 길 간다. 만나기도 전에 이별이다. 그 바람은 먼 곳을 돌아 이곳쯤에서 겨우 만날까 싶은데 또 발치에서 또 멀어진다. 반복한다. 윤회를 닮았다.
적도는 바람이 잔잔하다. 무풍지대. 평화로운 곳, 생성과 소멸이 공존하는 곳, 삶과 죽음이 섞바뀌는 곳이다. 그 적도를 따라 걸어가고 있는 것은 정작 지구다. 그런데 그 길을 남과 여가 따라 걷고 있다. 자잘한 다툼과 크나큰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세상에 대한 저항이며 극한 희망의 몸짓으로 보인다. 과연 이 남과 여는 만날 수 있을까. 어려울 것이다. 적도의 바람처럼 코앞에서 또 멀어질 것만 같다.
안상학/시인 artand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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