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강성률의 줌인] 한국 영화계 상반기 결산

'7번방의 선물' 돌풍 뒤에는 골리앗 물리친 다윗 있었다

# 넥스트엔터테인먼트 약진…상반기 점유율 36.7%로 1위

# 자본도 극장도 빈약하지만 콘텐츠'개봉시기 전략 세워…현재 '감시자들' 흥행몰이

시간이 살처럼 흘러 2013년도 벌써 상반기가 지나갔다. 이맘때가 되면 지난 시기 한국 영화계를 돌아보게 된다. 마침 한국영화진흥위원회가 이달 4일, '2013년 상반기 한국영화산업 결산'을 발표했다.

발표에서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전체적인 영화 관객이 늘었다는 점이다. 상반기 총 관객 수는 9천850만 명으로 역대 상반기 최대치를 기록했다. 작년의 8천326만 명에 비해 1천524만 명(18.3%)이나 증가한 수치이다. 전체적인 관람객의 증가는 한국영화와 외국영화 공히 발생했다. 상반기 기록에서 조금만 더 좋은 기록이 나온다면, 영화 관객이 2억 명인 시대도 현실화될 수 있을 전망이다.

상반기 최고 흥행 기록은 1천281만 명을 동원한 '7번방의 선물'이었고, 다음으로 '아이언맨 3'(900만 명), '베를린'(717만 명), '은밀하게 위대하게'(664만 명)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총 4편의 영화가 500만 명을 넘겨, 어느 때보다 대규모 흥행작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2년 상반기의 경우 500만 명을 넘긴 영화는 '어벤져스' 단 한 편뿐이었다.

흥미롭게도, 전체 매출 증가율은 관객 증가율 18.3%에 못 미치는 12.7% 증가에 그쳤는데, 그 이유는 3D 영화 관객 수가 큰 폭으로 하락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신기한 구경거리로서의 3D 영화가 큰 매력으로 다가오지 않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일까? 실제로 작년 '어벤져스'의 3D 관객 점유율은 19.8%였으나, 올해 '아이언맨 3'는 11.4%에 불과했다.

올해 상반기 영화계 결산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배급사 ㈜넥스트엔터테인먼트(NEW)의 약진이다. 자본도 극장도 빈약한 NEW가 대기업 계열이며 극장 라인을 소유하고 있는 씨제이이앤엠(CJ E&M), 롯데쇼핑㈜롯데엔터테인먼트, 극장은 없지만 대기업 계열인 쇼박스㈜미디어플렉스를 따돌리고 1위를 차지한 것이다.

한국영화와 외국영화를 합친 전체 배급에서는 '베를린' '타워' '지.아이.조2' '전설의 주먹' 등을 배급한 CJ E&M이 22.9%의 관객 점유율로 배급 점유율 1위에 등극했고, '7번방의 선물' '신세계' 등을 배급한 NEW가 5월 말까지 누적 배급 점유율 1위를 유지했으나, 6월 흥행작을 내지 못하며 21.4%의 관객 점유율이라는 근소한 차이로 2위에 올랐다. 연초 '박수건달'과 6월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배급해 점유율 13%를 차지한 쇼박스가 3위, '아이언맨3' 단 한 편의 흥행으로 배급 점유율 12%를 차지한 소니픽쳐스릴리징월트디즈니스튜디오스코리아㈜가 4위, '월드 워 Z' '연애의 온도' 등을 배급한 롯데엔터테인먼트가 9.8%로 5위에 올랐다. 그러나 2013년 상반기 한국영화 배급 점유율만 놓고 보면 NEW가 36.7%를 차지해 27.6%를 기록한 CJ E&M을 멀찍이 앞섰다. 쇼박스가 23%로 3위, 롯데엔터테인먼트가 8.9%로 4위를 차지해 4대 메이저 배급사들이 96.4%라는 압도적 점유율을 기록했다.

NEW가 배급 점유율 1위를 차지한 것이 대단한 것은 배급 편수를 보면 알 수 있다. CJ E&M이 14편, 쇼박스가 6편, 롯데엔터테인먼트가 10편을 배급한 것에 비해 NEW는 고작 4편만 배급했다. 이렇게 적은 편수로도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한 것이니 얼마나 대단한가! 이것만이 아니다. 대기업 계열이 아니기 때문에 자본이 적어 좋은 작품에 투자하지도 못하고, 극장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와이드 릴리스 개봉을 할 수도 없다. '7번방의 선물'이나 '신세계'가 스크린 독과점과 거리가 멀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NEW는 이 모든 악조건을 넘어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이다.

NEW의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다. 외화 전문 배급사였던 NEW는 2010년 한국영화 배급에 진출했다. 당시 CJ엔터테인먼트, 쇼박스, 롯데가 3강을 구축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본도 극장도 없는 NEW의 진출을 눈여겨본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2012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NEW가 배급한 '부러진 화살' '러브픽션' '내 아내의 모든 것' '피에타' 등이 연이어 평단과 관객의 호응을 얻어내며, 총 관객 2천344만 명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남긴 것이다.

NEW의 중심에는 쇼박스 대표를 지냈던 김우택 대표가 있다. 탁월한 감각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그는 직원들의 다양성을 존중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그를 따르는 직원들도 예민한 영화적 시각과 흥행적 감각을 지니고 있는 이들이 많다. 이들이 만나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조그만 기적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NEW가 배급한 '7번방의 선물'은 결코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아니다. '괴물' '해운대' '도둑들'처럼 많은 예산을 들이고 스타가 주연한 영화가 아니다. 스크린도 866개로, 1천389개를 차지한 '아이언맨3'에 비하면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상반기 최고의 흥행을 기록했다. 여기에 NEW의 전략이 있다. 극장을 소유하지 못한 단점을 콘텐츠 개발에 치중하고, 개봉 시기를 적절히 조율하는 것. 그야말로 작품과 타이밍으로 승부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NEW가 배급하는 영화는 언제나 기대된다. 지금 한창 흥행하고 있는 '감시자들'도 NEW의 영화이다.

강성률<영화평론가·광운대 교수 rosebud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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