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폭염 정치에 뒷목 잡기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와 국정원 개혁을 둘러싼 여야의 대립과 갈등이 마치 한증막 같다. '정치 폭염'이라 불러도 크게 핀잔 들을 성싶지 않다. 한증막이야 조금 답답해도 땀 빼면 개운한 맛이라도 있지 지금 정치판은 그냥 찜통이다. 장마 사이에 들이닥친 폭염경보는 때 되면 자연히 물러가게 마련이나 박근혜정부 초장부터 어긋나기 시작한 정치 폭염은 앞으로 4년 반 한쪽이 엎어지고 나동그라지지 않는 이상 그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국민 혈압만 계속 오르고 있다.

1960년대 중국 문화혁명기 때 '적에게 관용을 베푸는 것은 인민에게 잔인한 것이다'라는 말이 유행했다. 이를 곱씹기라도 하듯 여야는 대화록과 댓글 때문에 서로 치고받기 바쁘고 야당은 아예 돗자리 깔 태세다. '성인이 어질지 못하면 백성은 개꼴이 된다'(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는 노자의 말처럼 꼭 우리가 그 짝이다. 정치의 도가 바르지 못하고 제 구실을 못하면 백성은 고단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요즘 국민 처지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고립무원이다. 배 좀 잘 몰라고 키를 맡겼더니 기대에 미치기는커녕 거친 파도에 뱃전만 들이부딪혀 속만 뒤집어 놓고 있다. 민생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도 여야는 정쟁으로 봉두난발이고 대통령은 뒷자리에서 쓴소리 하기 바쁘다. 잘하라고 품계까지 올려놓았더니 현오석 경제팀은 뭘 하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며 여기저기서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어저께 국무조정실이 140개 국정 과제 추진 상황에 대해 중간 성적표를 내보니 청년 취업'창업 활성화와 맞춤형 복지 전달 체계 개편 등 9개 과제를 제외하고 131개 과제가 정상 판정을 받았다는데 국민의 체감 지수는 정반대다. 녹색등이 아니라 빨간등이 켜졌는데도 정부는 엉뚱한 소리나 해대니 국민들 속도 폭염경보 발령이다.

더 무서운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 정치의 증오와 갈등의 골이 깊어지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국민은 숨 넘어갈 지경인데 긴급 처방을 해도 모자랄 판에 정치가 마치 속담처럼 '나도 덩더꿍 너도 덩더꿍' 꼴이니 창조경제니 국민 행복 시대니 말만 그럴싸할 뿐 눈에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여야 정치권이나 정부가 서로 한 치의 양보나 타협도 없이 버티기만 하니 놀부 제사 지내듯 풍토가 인색하다 못해 고약하기까지 하다. 정치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정치는 모두에게 최선의 패를 뽑는 선택이자 결단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정치는 과거 정치의 악습만 고스란히 물려받고는 그게 전부인 줄 안다. 여나 야나 정치철학이 허당이니 오기나 부리고 막말만 해댄다. 국민이 정치를 혐오하고 피로감을 느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박 대통령이 이달 말 4박 5일의 휴가를 떠난다고 한다. 대통령 휴가에 대한 청와대의 발표는 매년 판에 박은 듯 똑같다. 특별한 일정 없이 국정 현안에 대한 구상을 가다듬었다는 것이다. 짧은 휴가에서 특별한 것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 그른 일이지만 역대 대통령의 휴가 전후로 정국이 확 달라졌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휴식이 창조의 원천이라지만 시국이 심상찮다. 국정 현안이 산적해 있다. 지지율 63%에 고개 끄덕일 계제가 아닌 것이다. 새 정부 출범 때 작성한 국정 로드맵대로 제대로 추진되고 있는지, 각 부처가 정확히 스텝을 밟고 있는지 따지고 재촉해야 한다. 경험 많은 어부는 이마에 스치는 한 줄기 바람으로도 기후와 물때를 감지한다고 했다. 우리 정치가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결국 얻을 것이라곤 퇴보와 파국밖에 더 있겠나.

노자는 '뛰어난 병사는 무력을 좋아하지 않고 싸움에 능한 사람은 화내지 않는다'고 했다. 싸우기만 좋아하고 국민 화 돋우는 데 일가견이 있는 우리 정치가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더 늦기 전에 정치 풍토를 바꿔야 한다. 법(法'강력한 통제)과 세(勢'강권에 의한 위협), 술(術'권모술수와 음모)이 어지러운 정치가 아니라 타협과 균형, 이성이 조화하는 새 정치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 우리 정치가 대전환의 물꼬를 트지 못하면 망망대해에 쪽배 신세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제 결단해야 한다. 대통령부터 정치를 바꾸자고 선언해야 한다. 수첩 든 매니저가 아니라 리더가 되어야 한다. 국민에게 비빌 언덕이 되지 못하는 정치는 용도 폐기고 국민 뒷목 잡게 하는 정치는 이제 절대 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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