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별별 세상 별난 인생] '짜장박사' 김종암 씨

짜장면은 미완성 '과학' 개발한 신메뉴 30여종

경산시 삼남동 남부주민센터 앞에 있는 중국음식점 '정통 천안문'. 이곳에는 다른 중국음식점에서는 볼 수 없는 이름조차 생소한 이색 메뉴가 즐비하다. 찜뽕, 된장짜장면, 찜된장, 중화막국시, 즉석맛짜장 등. 퓨전 짜장면을 개발한 주인공은 짜장박사 김종암(57) 씨다. 김 씨는 자신의 인생을 짜장면에 걸고 있다. 짜장면 인생 42년째. 자타가 인정하는 짜장면 전문가다. 그가 개발한 이색 짜장면 종류만 30여 종에 달한다. '된장짜장면'은 특허출원까지 했다. 그는 요즘도 잠을 자다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벌떡 일어나 메모를 할 정도로 짜장면 메뉴 개발에 심취해 있다.

◆중학교때 처음 본 그 맛…실컷 맛보려 음식점 취직

자타가 인정하는 짜장 박사 김 씨의 인생은 마치 영화 같다. 50여 년의 삶을 살면서 꿈과 희망, 그리고 수없는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며 숱한 좌절을 겪는 등 굴곡진 삶의 연속이었다. "중학교 때 학교 행사를 마치고 친구 엄마를 따라 중국집에 가서 난생처음 먹어본 짜장면의 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김 씨가 짜장면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중학교 3학년 시절.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고교 진학을 포기했다. 먹고살기 위해 기술을 배워야 했다. '식당에 취직하면 적어도 굶어 죽지는 않는다'는 생각이었다. 짜장면을 실컷 먹고 싶은 생각에 형님을 따라 부산에 내려가 중국음식점에 취직, 철가방 배달부 생활을 시작했다.

틈틈이 주방에서 어깨너머로 요리기술을 익혔다. 몇 년 후 기술을 다 배웠다고 생각해 고향으로 왔다. 대형 중국음식점에 들어가 보니 실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주방장 보조 실력밖에 안 됐습니다. 우물 안의 개구리였던 셈이지요." 오기가 생겼다. 밤마다 독학으로 공부를 했다. 마침내 군 제대 후 대구 북구 산격동에 자신의 이름을 딴 '종암반점'을 개업했다. 주방 보조 생활을 시작한 지 10년 만에 마침내 중국음식점 사장이 된 것. 하지만 식당 경영에 대한 경험 부족으로 10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다시 남의 집 주방장 생활을 전전했다.

◆손님 '민원'에 아이디어, 환경짜장면'된장짜장면…

일이 많아지고 사장과 마찰을 빚으면서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했다. 업무를 마친 후 동료와 어울려 술을 마시는 일로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자연스럽게 도박에 빠져들었다. 여름철 땀범벅이 되면서 고생해 모은 돈을 하루 저녁에 다 날리기도 했다. 더는 외지에서 버티기 힘들었다. 결국, 고향으로 갔다. "가진 기술이라고는 중국음식 만드는 일뿐이라 아내에게 '다시는 도박을 하지 않겠다'고 사죄하고 조그마한 중국집을 시작했지요." 하지만, 또다시 도박의 유혹을 떨치지 못했다. 번 돈을 다 날려버리기를 수차례나 거듭하면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결국, 아내가 친정으로 가버렸다. 마지막으로 아내를 찾아가 '다시는 도박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후 아내를 데려왔다. '즉석루'란 중국음식점을 운영하던 중 어느 날 아내가 대형사고를 당했다. 면을 뽑는 기계에 아내의 손이 끼는 사고가 발생한 것. 몇 달을 쉰 후 다시 영업을 시작했다. 가게에서 손님이 짜장면 찌꺼기를 남기는 것을 보고 "왜 짜장면을 남기느냐?"고 물었다. "젓가락으로 집히지 않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때부터 짜장면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 마침내 짜장면에 들어가는 야채를 큼직하게 썰어 젓가락에 잘 집히도록 하여 찌꺼기를 남기지 않도록 하는 '환경짜장면'을 개발했다. 음식찌꺼기 발생이 확 줄었다. 탄력이 붙어 6개월 후 '된장짜장면'을 개발했다. 맛이 담백해 단골손님이 몰려왔다. 특허까지 신청했다. 하지만 잘나가던 그의 요리 인생에 시련이 닥쳤다. 이색 짜장면이 대박 났다는 소문을 듣고 체인점을 함께 해보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좋은 조건에 귀가 솔깃했다. 전 재산 8천만원을 투자했다. 하지만 사기를 당했다. 참담한 심경으로 또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짜장면에 매달려 40여년…세계 음식과 접목해볼 것

고향에서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열심히 일했다. 신메뉴도 일 년에 한두 개씩 개발해 냈다. 가게 건물도 인수해 버젓한 주인이 됐다. "짜장면은 내 인생입니다. 꿈과 희망, 좌절을 거듭하며 제 인생의 동반자가 됐습니다. 정말 저는 누구보다도 요지경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정말 남은 인생을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동안 고생만 시킨 아내에게도 멋진 가장으로 인정받고 싶다. 요즘 자신이 구입한 건물에서 영업 중인 '정통 천안문'에는 부사관 출신인 아들 위송(28) 씨가 가업을 이어받기 위해 일을 배우고 있다. 아내 백순선(54) 씨와 딸 지애(30) 씨 등 네 식구가 한마음이 돼 열심히 일하고 있어 든든하다. 김 씨는 "짜장면은 완성된 음식이 아니라 연구하고 개발할 여지가 많은 '과학'이다"고 주장한다. 이제 해외로 음식여행을 떠나 다양한 세계의 음식을 경험할 계획이다. "그 음식에 짜장면을 접목해 세계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독특한 음식을 만들고 싶다"는 게 그의 목표다.

사진'박노익 선임기자 noi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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