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00세 시대, 은퇴의 재발견] <2부> 행복한 은퇴자들 ⑮노인이 행복한 세상 정휘수 씨

"대접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어른 될 자격 스스로 갖추자"

뒷방 늙은이가 되지 않겠다는 자각이
뒷방 늙은이가 되지 않겠다는 자각이 '신노인운동'의 처음이라고 설명하는 정휘수 씨. 그는 인터넷방송을 하며 짧은 시간이지만 노인이 행복한 시간을 나눌 수 있는 것 같아 즐겁다고 했다.
수성구의 문화해설사로 활약하고 있는 정 씨는 우리 동네의 역사를 아는 것이 우리 동네를 사랑하는 첫걸음임을 강조했다.
수성구의 문화해설사로 활약하고 있는 정 씨는 우리 동네의 역사를 아는 것이 우리 동네를 사랑하는 첫걸음임을 강조했다.
정 씨는 어려운 이웃들에게 조그마한 기쁨이라도 주고 싶어 색소폰을 배우고 있다.
정 씨는 어려운 이웃들에게 조그마한 기쁨이라도 주고 싶어 색소폰을 배우고 있다.

교직에서 은퇴한 정휘수(68'대구시 수성구 황금 2동) 씨. 그는 많은 타이틀을 갖고 있었다. 수성 시니어클럽 총회장, 대구시 시니어클럽 일하는 노인 연합회 회장, 인터넷 라디오 방송 작가 겸 DJ. 문화해설사 등등….

화려한 타이틀보다 관심을 끈 것은 그의 생각이었다. 그는 노인들이 행복해지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 했다. 생각만 바뀌어도 많은 이들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했다. 신노인운동을 제안한 이유였다.

그는 그것이 새마을 운동 못지않게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라고 말했다. 수명 100세 시대인 지금, 달라진 노인상을 만드는 것이 시대의 요청이며 현안이라고 했다.

'어르신 새 마음 운동'쯤으로 불러도 좋을 그의 신노인운동이 궁금했다.

-왜 노인운동인가.

"나를 비롯한 대개의 노인은 모이기만 하면 상대방을 비난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정부를 비판하고 리더들을 나무라고 심지어 지금 이 자리 함께하지 못한 사람까지 나쁘게 이야기한다. 남을 헐뜯고 나무라서 얻어지는 것이 무엇인가. 남을 비판하면 내가 잘나지는가? 대안 없는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보자는 제안이다. 좋았던 '한때'만을 들먹이며 보내기엔 너무나 많은 시간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생각만 바꾸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많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작했다."

-신노인운동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뒷방 늙은이처럼 살지 말자는 각성이다. 노인이라고 해서 당연히 대접받아야 하고 무료하게 시간만 죽이는 사람으로 분류되지 말자는 것이다. '어르신'이 될 자격을 스스로 갖추자는 이야기다. 아프리카 속담에 '노인 한 사람이 사라지면 도서관 하나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고 했다. 노인의 경험이 그만큼 중요하다. 우리 모두가 그들의 경험과 재능을 소중히 여기고, 노인들 스스로도 이런 재능을 기부하고 활용하는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보자는 운동이다. 도움을 받는 노인이 아니라 도움을 주는 노인이 되고 먼저 모범을 보이자는 취지다."

-경로당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 것도 그런 이유인가.

"지금 이 시간에도 경로당에서 수많은 노인이 시간을 죽이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곳을 나와 거리에서 휴지라도 줍고 내 자식이, 내 손자들이 살고 있는 이 사회를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을 해보자는 것이다. 경로당을 생산적이고 의욕적인 공간으로 만들어 보자는 목적에서 그런 제안을 했다. 노인복지는 정부가 혹은 지자체가 앞장서야 가능한 일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노인들의 생각만 바뀌어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고 본다."

-정부와 어르신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뜻인가.

"그렇다. 줄탁동시(啐啄同時'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어미 닭이 밖에서 쪼고 병아리가 안에서 쪼며 서로 도와야 일이 순조롭게 완성됨을 의미함)가 필요하다. 정부는 노인들을 위해 각종 지원을 해야 하고 노인들은 스스로 알에서 깨어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정부는 노인들을 공경하는 풍토를 만들고 그들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 노인들 역시 옛날 타령에서 벗어나 적극적이고 독립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무조건 나무라고 불평하는 습관도 버려야 할 것들이다."

-신노인운동을 위한 계획을 알려달라.

"선언으로 그치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은 노인지도자 교육에 치중하고 있다. 이것이 끝나면 밖으로 나갈 것이다. 휴지 줍기도 할 수 있고 노인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기부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겠다. 경로당에서 어린이나 주부를 위한 한자교실을 열 수도 있고 영어교사 출신이면 영어를 가르쳐도 좋을 것이다. 재능기부를 할 수 있는 공간만 만들어줘도 행복해지는 노인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할아버지 DJ다. 재미있을 것 같다.

"수성인터넷라디오 방송작가 겸 DJ이다. 한 달에 한 번 '즐거운 노년시대'라는 타이틀로 또래 세 명이 함께 진행하고 있다. 직접 시나리오까지 쓰고 있다. 한 시간 하는 방송이어서 시나리오 분량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대본을 쓰고 방송을 하는 일이 즐겁다."

-주로 어떤 이야기를 다루나.

"여행에 관련한 내용이나 역사에 얽힌 이야기를 자주 다룬다. 첫 멘트가 끝나면 시를 한 편 낭송한다. 세 명이 시를 나누어 읽고 노래 한 곡을 들은 후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눈다. 지난 5월에는 이해인 수녀의 '5월의 시'를 낭송했다. 70이 된 할아버지가 감정을 넣어 시낭송을 하는 장면을 생각해봐라. 멋지지 않나. 하하하."

-반응은 어떤가.

"미국에 있는 아들과 손자들이 실시간 모니터를 해온다. 대부분 '너무 딱딱하다. 자연스러워졌으면 좋겠다' 등 따가운 지적들이다. 아무래도 아직은 어색하다. 그래도 재미있다. 방송이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 나간다는 생각을 하면 짜릿하다."

-자녀들이 미국에 있다고 했다.

"아들 둘 모두 미국에 살고 있다. 그래서 매년 미국에 간다. 미국에 가면 여행도 여행이지만 노인에 대해 유심히 보게 된다. 최근에 미국서 인기 있는 것이 자신의 은퇴생활과 노년을 이야기하는 강연이다. 은퇴 후의 어려움 보람 행복 이런 이야기를 한다. '노인들의 TED'라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나라도 이런 운동을 한 번 해보면 어떨까 생각 중이다. 이런 장을 마련하면 노인들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쉬울 것 같아서다."

-교사를 하면서도 각종 봉사단체서 많은 활동을 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교직에서 맛볼 수 없는 또 다른 보람을 느꼈다. 이런 경험이 노인운동을 하고 싶은 이유가 된 듯하다."

-수성구 문화해설사도 하고 있다. 해설사 하면서 느낀 점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역사를 너무 모른다는 점이다. 수성구에도 곳곳에 유적지가 많다.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유적지도 있고 퇴계 선생과 관련된 유적들도 있다. 이런 것들을 많이 알리고 상세히 소개하고 싶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해 늘 아쉽다. 일주일에 3회 정도 해설을 하고 있다."

-앞으로의 꿈은.

"앞서 말했듯이 노인들이 존중받고 행복해지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물론 몇 사람의 힘만으로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런데도 하고 싶다. 아주 개인적인 꿈이지만 색소폰을 잘 불어 어려운 노인들에게 잠시나마 위안을 주고 신명나는 세상을 열어주고 싶다. 2년 전부터 열심히 익히고 있다."

김순재 객원기자 sjkimforce@msnet.co.kr

사진: 김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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