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계명대학교 국경연구소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국인의 국경 인식'을 조사했다. 한국의 북쪽 국경은 어디라고 생각하는가라는 물음도 있었다. 45.6%가 압록강-두만강, 38.4%가 휴전선을 북쪽 국경이라고 답했다. 전통적인 압록강-두만강 국경설과 현실의 휴전선 국경설이 혼재하면서 영토에 대한 고정관념이 붕괴되고 있다. 이를 통일 문제와 교차 분석을 해보니, 휴전선을 선택한 집단이 압록강-두만강을 선택한 집단보다 통일에 소극적이었다.
이러한 분산적인 국경 인식이 NLL(북방한계선) 문제를 둘러싸고 현재화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는 헌법 제3조는 압록강-두만강 국경설과 일치한다. "NLL은 영토선이다"는 새누리당의 주장은 휴전선 국경설과 일치한다. 앞선 논리에 따르면, NLL을 영토선으로 주장하는 새누리당은 통일에 소극적인 것이 된다. 북한과 대립각을 세우고 선거 때마다 북풍을 활용해 온 새누리당은 통일보다는 북한이 존재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여기고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북쪽 국경에 대한 인식은 북한의 존재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고 독립국가로 받아들이면 휴전선이,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으면 압록강-두만강이 국경이 된다. 전자는 헌법 제3조의 개정론으로 연결된다. 이에 대해서는 헌법학계에서 논란이 많다. 대체적으로 북한 존재의 특수성은 인정하나 헌법을 개정할 정도의 북한의 독립성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헌법에 비춰보면 한국의 국경(영토)선은 압록강-두만강이며, NLL은 영토선이 아니다. NLL은 북한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한 작전의 최전선이다. NLL을 지켜야 하는 본질적 이유는 이것이다. NLL을 영토선으로 규정하는 것은 법률적으로 영토 축소를 의미하며, 북한을 독립국가로 존재하게 하는 기반을 제공하는 역설이 성립한다.
국경과 영토는 주권의 통치 권역을 포괄하는 정치적 공간으로서 국가 형성의 기본 토대다. 국가 존립의 기본 요소인 영토 문제가 정쟁의 대상이 된 작금의 상황을 보고 네티즌들이 "이것은 나라도 아니다"라며 통분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문제의 시발은 국정원이 보관하고 있던 2007년의 남북한 정상회담 대화록 유출이다. 비밀문서를 왜 유출시켰으며, 봐서는 안 되는 기록을 누가, 왜 보았는가. 그리고 봤어도, 설령 내용 중에 애매한 대목이 있으면 그것을 적극적으로 국익에 맞게 해석해야 한다. 그런데 왜 회의록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내용을 'NLL 포기'로 해석하는가. 2007년 회담을 NLL 포기로 규정할 경우, 북한이 NLL 포기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NLL을 둘러싼 정쟁의 핵심은 국정원의 대통령 선거 '공작'에 있다.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은 댓글 작업으로 여론을 조작하고, 여당에는 NLL 관련 정상회담 대화록의 내용을 흘렸다. 여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을 영토선 포기라며 상대를 공격한다.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총괄선대본부장은 부산 유세에서 대화록의 일부를 그대로 인용해서 읽었다. 새누리당은 대선에서 이겼다. 검찰 조사로 국정원의 대통령 선거 개입 의혹이 밝혀졌다. 국회의 국정조사를 앞두고 국정원은 대화록 발췌본을 여당 의원에게 열람시키고, 며칠 후에는 자기들이 만든 전문을 공개했다. NLL 문제를 공론화시켜 대통령 선거 '공작' 의혹을 덮으려 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지금 전개되고 있는 모든 악의 발원지는 국정원이다. 국가 안보의 최첨병인 국정원이 국가 안보와 민주주의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국정원 스스로 존립 근거를 없애버린 것이다. '국정원의 명예를 위해서' 대화록을 공개했다고 한다. 대화록 공개는 세계 외교사에 유례가 없으며, 앞으로의 한국 외교를 위험에 빠뜨렸다. 권력의 편에 선 그들에게는 대통령 선거가 중요했다. 그들은 지켜야 할 국가의 안보 대신에 조직의 명예를 지켰다. 살아남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조폭의 행태와 닮았다. 걸어가던 소가 웃는 이유를 알겠다. 이대로 두면 지금의 여당도 언젠가는 국정원의 '공작'에 놀아날 것이다.
계명대 교수·국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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