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 의과대학 부속 고등간호학교의 입학자격은 1959년 2월부터 중학교 졸업자에서 고등학교 졸업자로 한 단계 더 높아졌다. 이때부터 간호학교는 초급대학과 정규대학의 중간 위치를 갖게 됐다. 당시 입학정원은 50명이었다. 입학 시험과목은 국어, 영어, 수학, 사회 필답시험과 함께 구술시험, 신체검사가 있었다. 평균 경쟁률은 2대 1 정도였다.
입학 자격이 이처럼 높아지면서 '간호학교'로 불리기는 했지만 정식으로 3년제 전문학교 과정의 간호학교가 된 것은 1962년 1월 교육법이 개정된 이후였다. 이때부터 '경북대 의과대학 부속 간호학교'로 정식 개편됐다. 학년 당 학생 수는 40명이었고, 교육과정은 1, 2학년에서 교양 및 전공을 배우고, 3학년 과정에서 전공과목과 임상실습을 했다.
이들 간호학교를 마치면 졸업과 동시에 간호원 자격증이 부여됐다. 그러나 1963년 2월부터 국가고시제가 시작돼 시험에 합격해야 간호원이 될 수 있었다. 첫 시험에서 간호학교 졸업생 42명은 모두 합격했고, 이들 중 이한경이 전국 수석을 차지했다. 1974년 1월 의과대학 간호학과가 신설되자 간호학교는 마지막 졸업과 함께 1974년 2월 28일 사라졌다.
한편 동산기독병원 부속 간호고등학교는 1961년 11월 초급대학 설치기준에 따라 문교부로부터 '동산기독병원 간호학교'로 개편 인가를 받았다. 당시 병원장이던 하워드 마펫이 교장을 겸직했다. 1964년 미국 뉴저지주 간호대학 마리우드 교장의 주선으로 시카고 제4장로교회로부터 헌금 60만달러를 모았으며, 1967년 간호대학 7층 건물을 완공했다.
당시 간호학교 학생들은 모두 기숙사에서 생활했고, 상당 기간 선교후원금으로 등록금과 기숙사비를 충당해 준 덕분에 학생들의 경제적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아울러 해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동산기독병원 의료진과 간호학교 교수들의 수준 높은 강의와 임상실습 덕분에 전국적인 명성을 떨쳤고, 국내 유명 병원과 미국 등지로의 취업도 활발했다.
당시 졸업생들은 국가고시 100% 합격, 취업률 100%였다. 초창기부터 1974년까지 768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는데, 이들 중 절반가량인 373명이 미국, 서독, 캐나다 등지에 취업했다. 한편 간호학교는 1974년 3월 동산기독병원 부속 간호전문학교로 바뀐 데 이어 1979년 1월 동산간호전문대학으로 개편됐다.
김수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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