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근로계약서 없는 학원강사, 乙에도 못 끼는 '파리목숨'

대구시내 한 영어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는 이모(26) 씨는 이 학원에서 일하는 동안 여러 가지 불합리한 일을 겪어야만 했다. 학원 강사로 일을 시작하며 이 씨는 학원장에게 근로계약서를 요구했지만 학원장은 "우리 사이에는 믿음으로 일을 해야 한다"며 근로계약서를 작성해 주지 않았다. 그리고 월 150만원을 급여로 받기로 했지만 막상 첫 달 월급은 수습기간이라며 10% 줄어든 135만원을 받았다. 이 씨는 "첫 달이 수습기간이라는 말을 계약 당시 들은 적 없다"며 "근로계약서가 없으니 4대 보험도 안 되고 결국 소득세 3.3%를 공제한 금액만 월급으로 받았다"고 말했다.

이 씨는 학원을 그만둘 때도 불합리한 일과 함께 폭언까지 들어야 했다. 이 씨는 8일 학원장으로부터 "이달 31일까지만 일하라"며 해고통보를 받았다. 이 씨는 해고에 대한 서면통보와 함께 30일분의 통상임금을 요구했다. 이에 학원장은 "우리는 그런 것 줄 수 없다. 고용노동청에 신고하려면 마음대로 해라"고 말했다는 것. 이 씨는 "내가 요구한 것은 근로기준법상에도 받을 수 있는 수당이었다"며 "정당한 요구를 했는데 '대구에서 발을 못 붙이게 하겠다'는 식으로 폭언을 했다"고 말했다.

일부 학원의 강사들이 근로계약서를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고용 당시 약속했던 것과 다른 업무와 급여를 받는 등 열악한 대우를 받고 있다.

한 보습학원에서 영어강사로 일하던 신모(26'여) 씨는 "원래 오후 2시 이후 강의를 맡기로 돼 있었는데 학원에서는 낮 12시 30분까지 출근해 학원 청소와 사무실 지키기를 요구했다"며 "학원에 학생을 가르치러 온 건지 가정부 일을 하러 온 건지 모를 정도였다"고 말했다.

영어강사 경력이 있는 윤모(26'여) 씨는 "서너 군데 학원에서 일하면서 근로계약서를 쓴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며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아 학원을 그만둘 때 실업급여도 받지 못하고 정규직으로 들어와서는 시간제 비정규직으로 처우가 바뀌는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학원 강사들의 고용불안정 사례는 대부분 중소형 규모의 학원에서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한 학원장은 "최저임금은 오르고 수강료는 더 올리지 못하게 묶여 있고, 학생 수는 줄어드는데 세금까지 겹치면 도저히 학원을 운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며 "근로계약서 작성 시 부담해야 하는 4대 보험금도 학원에서는 무시 못할 비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학원장은 "대형 학원은 물론 요즘은 대부분의 중소형 학원에서도 근로계약서가 일반화돼 있다"며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는 학원이라면 무허가 학원일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지방고용노동청 관계자는 "학원 강사의 경우 근로계약 조건이 일반 직장 근로자와 다른 경우가 많아 학원의 근로기준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기 힘들 때가 많다"며 "학원 강사와 학원장 모두 근로계약서 작성을 의무적으로 해야 이후 발생하는 분쟁에 적절히 조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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