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지 말고 좌절하지 마라. 희망을 잃지 마라. 살겠다는, 그리고 나는 완치될 수 있다는 마음의 자세가 대단히 중요하다. 맑은 마음을 가져라."
지난 4'24 재보선을 통해 주목받은 정치인은 무소속 안철수 의원과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 외에 이완구(63) 새누리당 의원도 있다. 이 의원은 사실 '암'을 극복하고 정치적 재기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4'24 재보선의 숨은 영웅이라고 할 수 있다.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으로 지난 1년 동안 투병생활을 하면서 항암치료를 하다가 온몸의 털이 다 빠지는 등의 고통을 겪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고 털어놓을 정도로 그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는 선거 과정에서 '큰 정치'를 내세워 77.4%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2009년 세종시 정국에서 충남지사직을 던진 후 4년의 정치적 공백을 일거에 해소시키면서 JP(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에 이은 충청권의 대표주자라는 위상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 1년 동안 혈액암으로 고생하면서 머리는 물론, 눈썹까지 다 빠진 모습이었다. 8월 말까지만 해도 출마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랬던 사람이 오뚝이처럼 살아나서 출마를 해서 당선됐으니 '독한 사람'이라며 대단하다고 하기도 하지만 '암은 극복할 수 있는 그런 병'이라고 생각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가 암과 투병하는 많은 국민들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다.
자민련 바람이 거세게 불던 1996년 15대 총선에 새누리당의 전신인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한 그는 충남에서 유일하게 당선되면서 국회에 첫 입성했지만 자민련으로 당적을 이적했다가 2002년 대선 때 신한국당으로 다시 복귀하는 등 충청권의 지역정서에 따라 적잖은 정치적 풍파를 겪기도 했다.
충남지사를 거쳐 9년여 만에 3선 의원으로 복귀하는 데 성공한 그는 정치권에서 '충청권 맹주'로 평가하는 데 대해 "충청을 대표하는 한 사람으로 꼽아주셔서 감사하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제대로 열심히 하라는 성원과 격려의 의미로 받아들인다"면서도 다소 어색해했다.
-국회로 재입성한 것을 축하한다.
"9년 만에 다시 돌아오니 감회가 남다르다. 첫 등원할 때 "국민의 뜻이 내 정치의 등대"라는 초심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외형적으로 국회는 많이 바뀐 것 같지만 본질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
무엇보다 '국회 선진화법'이 마음에 걸린다. 이 법은 지구가 멸망하기 전까지는 개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한쪽에서 반대하면 개정할 수 없게 돼 있다. 민주당에서 노(No)라고 하면 안 된다. 민주당이 집권하게 되더라도 새누리당이 노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진짜 고약한 법이다.
선거를 왜 하는가. 승자가 책임을 지고 임기 동안 열심히 해서 다시 심판을 받는 것이 민주주의에서 선거제도의 본질인데 거기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어쨌든 15, 16대 때의 '이완구'보다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 아닌가.
"민선 도지사 겪으면서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3선의 여기까지 왔다. 더구나 이제 나이도 60이 넘었다. 나름의 경험과 내공과 경륜을 쌓았다.
지난해 병마와 싸우다 보니까 '아, 이게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구나. 의지만 갖고 되는 것이 아니구나'란 생각이 들면서 무심(無心)의 경지를 터득했다. 내려놓을 줄도 알게 된 것이다. 초선 의원 시절에는 지역구(청양'홍성)에 515 개의 자연부락이 있었는데 해마다 꼭 한 번씩은 방문했다. 민원사항도 다 들어줬다.
이번 재보선에 출마하면서 법정 선거홍보물에 공약을 딱 11개만 약속했다. 부여와 청양을 본질적으로 바꿀 수 있는 큰 정치를 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국정과 도정은 본질적으로 같다. 도정에는 외교와 국방이 없을 뿐이고 규모가 다르다. 우리 정치 시스템에서 가장 큰 문제는 남북문제가 아니라 남남갈등이다. 세대 간 지역 간 이념 간 계층 간 갈등을 어떻게 조정하고 극복하느냐가 중요하다."
-'큰 정치'를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는데 이완구의 큰 정치는 무엇을 목표로 하는가.
"충청도의 영혼과 자존심을 지키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국회의원 한 번 더 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의미는 충청도를 넘어선 전국적인 정치를 하겠다는 것이다.
'큰 정치'라고 하면 대권을 연상하게 되는데 대권도 포함되는 것은 맞다. 그렇다고 큰 정치를 대권을 겨냥한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지역 문제나 국부적인 문제에 머물지 않고 큰 틀 속에서 사안을 보고 결단을 내리고 의정활동을 하고, 더 크게 얘기하자면 왜 국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선택했는가, 왜 새누리당에 정권을 다시 맡겼는지 곰곰 생각해보고 정치를 하겠다는 뜻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새 정부가 출범한 지 5개월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 당권이나 대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대단히 경박한 일이다. 현재는 영어로 'take-off' 비행기가 이륙하는 단계인데 국정은 적어도 1년은 지나야 정상궤도로 진입할 수 있다. 그런데 사리에 맞지 않는 쓸데없는 이야기로 튀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지금은 이 정권의 성공을 위해 깊이 생각하고 단합하고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홍준표 경남지사 같은 경우 '친박이었다면 핍박했겠느냐'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했는데 누가 핍박했다는 것인가. 참 답답하다."
-홍 지사의 진주의료원 폐쇄 조치가 잘못이라는 지적인가.
"나도 충남지사를 했는데 충남에도 4개의 도립의료원이 있다. 적자가 있었지만 나는 보건소를 적자 개념으로 보지 않는다. 적어도 공익적 개념으로 접근해야지 수익 관점으로 보면 지방의료원을 운영할 수 없다.
지방의료원에 대한 개념 자체가 나와 다르다. 돈 있는 사람은 서울의 대학병원으로 간다. 지방의료원이나 도립병원에 가는 사람은 넉넉한 사람이 아니지 않으냐. 홍 지사의 접근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폐쇄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홍 지사가 대권 등 다른 정치적 계산을 한 것이라고 보지는 않지만 홍 지사의 처사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강성노조 핑계를 대는데 그런 측면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화를 통해 정상화 노력을 하는 것이 맞지 그런 식으로 폐쇄하는 것은 아니다."
-'친박'이라고 알려져 있다. 개인적 인연은 있는가.
"박근혜 대통령과 가까우니까 '친박'이라고 해도 이의가 없다.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세종시 정국에서 그 좋다는 도지사직을 사퇴할 때는 세종시 문제가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철학적 차원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당시 세종시를 하지 않으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생각에 대해 동의해줄 수 없었다. 당시 '도백'이었으니까 같은 당에서 그렇게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소신과 원칙, 책임 차원에서 박 대통령과 조금 비슷하다. 그 당시에는 수시로 박 대통령을 만나 여러 가지를 건의했지만 세종시 문제에 대해서는 한 번도 없었다. 기본적으로 생각이 같았다. 자신이 한 말과 약속에 대해서 철저하게 지킨다는 점에서도 (박 대통령과) 닮았다."
-이 의원이 추구하는 큰 정치의 다음 단계는 전당대회 정국에서 비껴날 수 없다. 또 내년 지방선거에서 현재의 체제로는 어려운 것 아니냐는 분위기도 당내에 있는 것 같다.
"너무 급하게 몰아붙이고 있다. 지난번에 당 사무총장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고사했을 때도 마찬가지지만 나는 당과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어떤 궂은 일, 당의 문지기라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심정에 변함이 없다. 지금 황우여 대표가 당을 잘 이끌어 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때다. 황 대표는 박 대통령을 당선시켰고 다소 외유내강하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지만 부족한 점은 보완해서 적어도 1년까지는 당청이 단합된 모습으로 가줘야 한다. 그때까지는 흔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내 입장이다.
지방선거 이대로는 못 치른다고 하는 것은 성급하다. 지금은 강력한 당청 관계와 총리 부총리 등이 확실한 리더십을 보여줄 때다. 그다음에는 어떤 역할이든 받아들이겠다."
-병마와 싸우면서 좌절도 겪고 마음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비애와 배신의 시간'이라고 하고 싶다. 재선 의원을 지내고 충남지사를 역임하기까지 나를 따르고 가까이했던 많은 동료와 친구 등 수없이 많은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도지사를 사퇴하고 암까지 걸리니까 핸드폰이 울리지 않더라. 다 끝났다고 생각한 것이다.
슬프고 배신의 시간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잘했는가' 하고 스스로 반성하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스스로 내려놓으니까 무심의 경지에까지 갔다. 결과적으로 아주 좋았다.
살고 싶은 욕망이 있었지만 하느님이 데려가신다면 가야지 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이게도 됐다.
그런데 올 3월 초, 주치의와 상의를 했는데 '선생님 제 몸 상태가 어떤가요. 출마해도 되겠습니까' 하고 물으니 '이 병은 금방 죽는 것이 아니니까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20년을 더 살 수도 있습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곧바로 출마선언하고 건강한 사람보다 더 열심히 뛰었다."
서명수 서울정경부장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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