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목 이책!] 대한민국에 건축은 없다

대한민국에 건축은 없다/이상헌 지음/효형출판 펴냄

미국과 한국의 건축사 자격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는 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교수로서 건축설계와 역사이론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 이상헌은 '대한민국에 건축이 없다'고 정의한다. 공학의 일부로서가 아니라 문화로서의 건축이 강조되는 것처럼 건축학이라는 독립된 존재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저자는 먼저 '건축이란 무엇인가?'에서 인류 문명사에서 건축은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지 그 정체성을 확인한 후, 두 번째 장 '한국에 건축은 없다'에서 건설만 존재할 뿐 건축이 부재한 한국사회의 현실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그리고 마지막 장 '한국에 건축은 있다'에 이르러 여러 문제점을 넘어 한국 건축이 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대안을 제시한다.

저자는 하나의 건축물은 개인의 창조물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모여서 공공 환경을 만들고 사람은 그 안에서 공동체를 꾸려 살아간다. 그래서 서구사회는 일찍부터 건축에 문화적 의미를 부여하고, 인문적 이론을 접목하여 체계적인 학문으로 발전시켜왔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전통건축은 정치와 종교 사상을 구현하는 수단으로 쓰였을 뿐 체계적인 학문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건축의 부재'는 행정조직과 법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조직에서 건축을 다루는 부처는 국토교통부이고, 정작 문화를 다루는 문화체육관광부에는 건축을 다루는 부서가 없다. 문화로서의 건축을 총괄적으로 담당하는 행정조직은 한국에 없다. 국가의 인식이 이러하니 건축 전문가들이 아니라 행정직 공무원들이 건축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공무원은 책임 회피를 위해 자문위원회를 우후죽순 만들어 업무 처리 단계만 비효율적으로 늘려놓았다.

저자는 명확한 현실 인식과 건축계 내부의 자기 개혁을 바탕으로 한 한국 건축의 이론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무조건 서양의 건축을 좇을 것이 아니라, 한국의 전통건축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정의를 통해 우리만의 건축이론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각 나라가 저마다 고유한 문화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건축 또한 하나의 문화이기 때문에 같을 수 없다.

건축문화가 없는 상태에서 독자적인 이론화가 가능할지 묻는 우려가 있지만, 저자는 오히려 지금이 건축이론을 세울 적기라고 말한다. 현대사회의 복잡한 양상과 빠른 변화에 발맞추기 위해 세계 건축계가 기존의 건축적 전통을 넘어서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자유로운 상상을 막는 걸림돌이 없는 한국건축이 역설적으로 유리한 입장이라는 것이다. 271쪽. 1만6천원.

이동관기자 dkd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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