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여행자들'이라는 소설이 있다. 낮과는 다른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 여행지의 밤을 상상하게 하는 제목이다. 언젠가 한번은 와본 것 같은 느낌. 기시감, 프랑스어로 '데자뷰'라고 한다는데 이스탄불에서 보낸 밤에는 더욱 그런 감이 들었다. 짧은 일정의 여행자들은 하루가 천금 같은 시간이라 잠자는 시간을 줄여서라도 늦은 밤까지 더 많은 곳을 둘러보고 이국의 밤 문화를 경험하려 한다. 터키는 한국과 거의 비슷한 위도상에 있으므로 기후도 같다. 사람들은 더운 여름 한낮보다 밤에 많은 활동을 하게 된다. 이스탄불의 밤이 즐거울 수 있는 것은 도시 곳곳에 특색 있는 볼거리들이 있기 때문이다. 흔히 터키의 90%는 이스탄불이라고 말한다. 밤의 이스탄불을 보려면 신시가지로 가야 한다. 번화가인 탁심 광장과 이스티크랄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구시가지에서도 역사적인 정취는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술탄아흐메트 지역에는 아야소피아 박물관, 블루모스크, 히포드롬, 톱카프 궁전 등 핵심 볼거리가 몰려 있다.
술탄 아흐메트 자미로 불리기도 하는 블루모스크는 높이 43m로 규모 면에서 터키 최대의 이슬람 사원이다. '자미'라는 말은 이슬람 사원을 지칭하는 터키어로 '엎드려 경배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비잔틴 시대의 건축물인 아야소피아 박물관에 대한 이슬람 세력의 우위를 상징하기 위해 건축됐다. 내부의 벽과 기둥이 푸른색 타일로 장식되어 있어 블루모스크라고 불린다. 오스만 제국의 14대 술탄인 아흐메트 1세가 7년이 걸려 1616년에 완공했다. 유독 종교적 신념이 강했던 술탄은 기공식에 참석해 직접 땅을 파고 흙을 날랐다고 한다.
6개의 첨탑인 미나렛이 본당을 호위하듯 서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오스만 제국 때는 이 미나렛의 개수가 권력의 상징이었다고 한다. 야간 조명을 잘 밝혀 놓은 모스크는 낮과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해 질 무렵에는 미나렛에서 흘러나오는 아잔 낭송소리가 여정을 느끼게 했다. 밤이 되자 조명이 밝혀지고 미나렛에 반사되는 아름다운 색상이 밤하늘과 어우러져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블루모스크의 야경을 잘 보려면 부근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야 한다. 이스탄불에서는 '높은 곳에 올라가라'는 말이 있다. 워낙 거대한 건축물이므로 전경을 촬영하려면 높은 곳에서 주변 풍경과 어우러진 모습을 찾아야 한다. 좋은 뷰 포인트로 유명한 대부분의 건물 옥상에는 노천 레스토랑이 자리 잡고 있다. 식사시간을 피해 맥주 한 병으로 전망 좋은 자리에 기대어 여행의 사색에 잠겨본다. 건너편의 아야소피아도 화려한 조명을 받아 웅장한 자태를 보여주고 있다. 아야소피아 성당과 블루모스크는 약 1천 년의 시차를 두고 건설된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의 결정판이다. 역사적인 두 건축물 사이에는 광장이 있다. 아시아와 유럽의 문명이 만나는 접점이자 가장 극명한 역사의 현장이다. 동서 문화가 겹쳐서 만나는 용광로를 식히기 위함인지 거대한 분수대가 아름다운 조명을 받으며 물을 뿜고 있다. 많은 시민들이 물소리를 들으며 밤늦도록 더위를 식힌다. 오는 8월 31일 저녁 무렵이면 이곳 아야소피아 광장 특설무대에서 한국과 터키가 공동으로 만드는 '이스탄불-경주세계문화엑스포 2013'의 개막식이 개최된다. 폐막식도 9월 22일 같은 장소에서 열려 불꽃놀이 등 야간 이벤트로 한국적 분위기를 연출할 예정이다.
발길을 신시가지로 옮긴다. 이스탄불의 편리한 대중교통편은 도로에 깔린 레일 위를 운행하는 빨간색의 '트램'이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연결하고 있어 무척 편리하다. 탁심 광장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각종 시위가 자주 일어나는 곳이다. 그곳에 연결된 긴 상점가가 이스티크랄 거리로 대구의 동성로에 해당한다. 큰길로 연결된 좁은 골목에는 아예 테이블을 밖에다 내어놓은 노천카페도 많다. 음식과 차이 또는 술을 마시며 대화하는 소리가 음악과 어우러져 밤하늘로 퍼져 나간다. 늦은 밤 이스탄불의 밤거리에도 관광객을 유인하는 호객꾼들이 있다. 한국인에게 유독 친한 척 접근하여 술집으로 데려가 바가지를 씌운다고 한다. 지방의 다른 도시에서 착한 터키인들의 친절을 경험했던 관광객들이 여행 막바지, 대도시 이스탄불 밤거리에서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다.
거리의 빈 공간에서는 다양한 퍼포먼스가 펼쳐져 볼거리가 많다. 온몸을 갈색으로 치장한 사람이 일인 무언극을 하고 있다. 사람이 아닌 동상인 줄 알고 있다가 돈을 주면 갑자기 움직이므로 행인들이 즐거워한다. 솥뚜껑 같은 악기로 은은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기도 한다. 이들은 자신의 노래가 담긴 CD를 팔고 있다. 밤거리를 걸으며 사람 구경도 하고 거리악사들의 가슴 벅차고 감미로운 음률을 듣노라면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려 한다. 여행이 막바지에 온 것 같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오래된 집들과 골목에서 나는 사람냄새, 그곳을 어슬렁거리며 감동했던 곳, 좋은 사진꺼리들이 마냥 펼쳐졌던 대륙횡단 실크로드, 시간이 지나면 그곳이 또 그리워질 것이다.
글'사진: 박순국(전 매일신문 편집위원) sijen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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