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 감염증으로 사경을 헤매던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의 상태가 호전됐다는 소식이다. 지난 18일에는 병원 침대에서 95번째 생일을 맞아, 다시 한 번 많은 이들이 그의 쾌유를 비는 모습이 언론에 소개됐다.
만델라는 의심할 여지없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에 오랫동안 투쟁한 영웅이다. 20대 중반부터 아프리카민족회의 청년동맹을 조직하는 등 반정부 활동을 벌이다 1964년에는 정부 전복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이 때문에 만델라는 27년 동안 감옥에 갇혔지만, 전 세계적인 탄원 운동으로 1990년 출소했다. 1993년에는 백인정부와 협상으로 인종차별 정책을 없애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1995년에는 첫 흑인 대통령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영웅은 이렇게 수많은 고초를 겪고, 이를 불굴의 의지로 극복해야 탄생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 또 다른 수많은 이의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만델라와 함께 남아공의 인종차별 정책에 가장 강력하게 저항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스티븐 반투 비코(1946~1977)가 있다. 만델라보다는 30세가량 어리지만, 학창 시절에 남아프리카 학생 기구를 조직하고, 1972년 흑인민족회의의 공동 발기인으로 참여해 의장이 됐다. 1973년에는 가택 연금을 당했다가 1977년 감옥에서 수사를 받던 도중 31세의 나이로 살해됐다.
이 사건은 지역 신문 편집자이자 비코의 백인 친구였던 도널드 우즈가 폭로하면서 세계적인 공분을 불렀다. 우즈는 비코의 일생을 그린 '아자니아의 검은 거인-반투 스티브 비코'라는 책을 냈고, 이는 1987년 리처드 아텐보로의 영화 '크라이 프리덤'(Cry Freedom)의 원작이 됐다. 또 컨트리 음악 스타인 톰 팩스턴은 1978년 '영웅들'이라는 음반에서 '스테픈 비코의 죽음'을 불렀고,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재즈 베이스 주자인 자니 다이아니도 같은 해인 1978년 '비코를 위한 노래'라는 음반을 냈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피터 가브리엘의 '비코'라는 곡은 1980년에 나왔다.
만델라와 비코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러나 세월이 훌쩍 흐른 지금 두 사람을 비교하면 한편 씁쓸하기도 하다. 시인 김수영이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고, 혁명은 고독한 것이라고 했던 것처럼 모든 자유 뒤에는 많은 이들의 숭고한 죽음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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