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돈 들여 고생 체험 '캠핑' 레저 대세 이면은

집짓고 밥하고 '생존놀이' 몰입…힐링에 흠뻑

캠핑이 레저문화의 대세로 떠오르면서 전국 유명 캠핑장들은 가족과 함께 다양한 여가를 즐기려는 캠핑족들로 붐비고 있다. 캠핑동호회
캠핑이 레저문화의 대세로 떠오르면서 전국 유명 캠핑장들은 가족과 함께 다양한 여가를 즐기려는 캠핑족들로 붐비고 있다. 캠핑동호회 '대출대도' 제공
캠핑 전문가들은 여행의 목적을 먼저 정한 뒤 여행지를 선택하라고 조언한다. 독자 이영민 씨 제공
캠핑 전문가들은 여행의 목적을 먼저 정한 뒤 여행지를 선택하라고 조언한다. 독자 이영민 씨 제공

요즘 레저문화의 대세는 캠핑(camping)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캠핑 인구가 120만 명을 헤아리면서 전국에 캠핑장이 450여 곳에 이른다. 올해 용품 시장은 2010년 2천억원보다 2배 증가한 4천억원으로 추산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혀 관계없을 것 같은 아파트 분양 시장에서도 캠핑장 주변 아파트가 힐링형 주거공간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자동차업계의 실적 역시 여가에 적합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좌우한다. 이쯤 되면 가히 '호모 루덴스'(Homo Ludens'유희의 인간)를 넘어 '호모 캠핑쿠스'의 시대라 부를 만하다.

그러나 캠핑 대열에 나서기를 주저하는 이들도 여전히 적지 않다. 고가의 장비들은 부담스럽기만 하고,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도 막막하다. 올여름 '숲 속의 하룻밤'을 막연히 꿈꾸는 이들을 위해 자칭타칭 '고수'들로부터 캠퍼(camper)가 되는 길을 들어봤다.

◆아빠, 우리는 캠핑 안 가?

캠핑 열풍이 거세게 불기 시작한 것은 불과 3, 4년 전부터다. 대부분의 직장에서 주5일 근무제가 본격 실시된 데다 TV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 등이 인기를 끌면서다. 여기에다 '힐링'이 사회적 화두가 되면서 인기에 가속도가 붙었다. 대구대 관광경영학과 이주희(54) 교수는 "과거에는 캠핑이 저렴한 숙박 형태에 그쳤지만 최근에는 가족 단위 웰빙 체험으로 자리매김했다"며 "리조트와 같은 대규모 숙박시설을 짓느라 환경을 훼손할 우려가 적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연예인들이 자녀와 함께 출연하는 TV 프로그램 '아빠! 어디 가?'는 가족형 오토캠핑(auto camping'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여행 중의 야영) 확산에 한몫했다. 등산'낚시 등의 취미활동을 즐기던 가장들이 독락(獨樂) 대신 자연에서 가족과 식사도 하고 휴식도 취하는 형태다. 요즘 주말만 되면 전국 캠핑장이 캠핑족들로 북적이는 이유다.

캠핑 열풍의 이면에는 '아빠의 재발견'이 있다. 주말이면 소파에 누워 TV를 보거나 쉬는 모습이 전부였던 아빠가 캠핑장에서는 집을 짓고, 요리를 하는가 하면 아이들과 적극적으로 놀아주는 '헌신형 가장'으로 탈바꿈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프렌디'(Friendy: Friend와 daddy의 합성어)의 유행이다. 회원 2천700명이 넘는 캠핑동호회 '대출대도'(대구 출발 대구 도착이란 뜻)의 운영자인 손근수(43) 씨는 "지금 중년들이 청소년 시절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캠핑을 다녀왔다면 요즘은 '친구 같은 아빠'와 간다는 게 큰 차이"라며 "가족 간의 관계 회복에는 캠핑이 최고"라고 귀띔했다.

캠핑 고수들이 꼽는 캠핑의 최고 덕목 가운데 하나는 자녀들의 사회성'인성 함양이다. 각자 자기 몫을 해야 하는 캠프에서 아이들은 협동심을 배우고, 남을 배려하는 법을 익힌다. 또 자연 속에서 좌충우돌하면서 자연스레 부모와 대화의 장이 형성되고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2005년부터 가족과의 주말 캠핑을 자주 즐기고 있다는 이영민(43'대구 수성구 수성4가) 씨는 "처음에는 소극적이던 아내도 아이들이 달라지자 캠핑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었다"며 "어린이가 있는 가정이라면 가족 캠핑을 꼭 권하고 싶다"고 했다.

캠핑장의 주류는 2040세대이지만 젊은 층의 전유물인 것만도 아니다. 정병칠(63'대구 달서구 월성동) 씨는 올해 상반기에만 16차례나 캠핑을 다녀온 마니아다. 절반 정도는 '솔캠'(혼자 가는 캠핑)이고 나머지는 부인, 친구들과 간다. 야생의 참맛을 느끼기 위해 전기'수도 시설이 갖춰진 오토캠핑장은 가급적 피하고, 인적이 드문 곳을 일부러 선택한다. 정 씨는 "환갑이 지났지만 캠핑을 떠나면 언제나 동심으로 돌아간다"며 "혼자 책 읽고, 사색하다 오는 캠핑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행복"이라고 자랑했다.

◆비싸야 제 맛?

울창한 숲, 청량한 계곡 혹은 하얀 백사장에서 가족'친구들과 함께 하룻밤을 같이 보내는 것은 도시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꾸는 꿈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텐트 바깥으로 펼쳐지는 하얀 눈 세상, 후드득 텐트를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나누는 소주 한잔의 낭만은 캠퍼들이 말끔하게 꾸며진 호텔이나 콘도를 외면하는 가장 큰 이유다.

하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게 걸림돌이다. 캠핑 문화가 레저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기존 캠핑용품업체 외에 아웃도어 의류 브랜드들도 잇따라 뛰어들고 있는데 오토캠핑형 제품을 제대로 갖추려면 1천만원이 훌쩍 넘는다. 캠핑을 위한 필수용품이라고 할 수 있는 텐트는 제조업체마다 신기술을 앞세우지만, 가격이 100만원을 호가하고 최고급 제품은 300만원대에 이른다.

특히 거실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캠핑을 즐기는 가족들이 늘어나면서 샤워시설, 싱크대, 옷장, 찬장까지 챙겨가는 경우도 있는데 이들 짐을 모두 챙기려면 최소 2시간이 넘게 걸린다는 게 캠퍼들의 솔직한 경험담이다. 거의 포장이사 수준인 셈이다.

캠핑 고수들은 이와 관련, 남들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한때 거센 열풍이 몰아친 수입 아웃도어 의류와 마찬가지로 히말라야 등반을 가는 것도 아닌데 최고급 풀세트를 굳이 고집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대출대도'의 운영진인 서영학(51'캠핑 경력 25년) 씨는 항상 차량에 캠핑 용품이 잔뜩 실려 있는 골수 캠핑족이다. 하지만 그의 장비들은 대부분 20년 가까이 쓰고 있는 '골동품'이다. 집에서 쓰던 압력밥솥, 밥상, 채반도 재활용한다. 서 씨는 "입문자라면 150만원 정도만 들여도 필요한 장비를 대충 갖출 수 있고 온라인 중고장터에도 쓸만한 제품이 넘쳐난다"며 "동호회에 가입해서 몇 번 따라다녀 본 뒤 구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소개했다.

캠핑 경력이 길면 길수록 짐이 단출해진다는 것도 고수들의 공통점이다. 지인들에게 캠핑 용품 구입을 자주 조언해준다는 이영민 씨는 "좌식 위주였던 텐트 문화가 테이블, 의자를 갖춘 입식으로 바뀌면서 장비가 5배는 늘어났다"며 "초보자들은 꼭 필요한 제품이 아니라면 천천히 구입하라"고 충고했다. 대구대 이주희 교수 역시 "선진국과 달리 국내에서는 캠핑 장비가 비정상적으로 고급화 추세를 보이고 있다"며 "장소와 용도에 걸맞은 제품, 캠핑의 콘셉트에 맞는 제품의 선택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장비의 노예가 되지 말고 자연 속에서의 불편함을 즐겨야 한다는 이야기다.

◆캠핑, 두려워하지 마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변에서 캠핑 간다고 하면 '뭐하러 고생하느냐'는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에는 캠핑을 모른다고 하면 시대에 뒤처졌다는 핀잔을 듣기 일쑤다.

고수들은 여기에다 잘 노는 법을 알아둬야 진정한 캠퍼가 되는 길이라고 입을 모은다. 단순히 먹고 자고 떠들다 오는 캠핑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시간과 돈을 투자해 미리 '공부'를 해둬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 준비도 하지 않은 채 떠나면 실망하기 마련이다.

서영학 씨는 "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을 하는지가 중요하다"며 "여행의 목적을 먼저 결정한 뒤 여행지를 선택하라"고 조언했다. 또 "여러 가족이 함께 떠난다면 사전답사가 필수"라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마냥 쉴 수도 있지만 관광지 탐방, 독서, 낚시, 물놀이 등 다양한 목적을 넣어서 여행을 설계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캠퍼들은 때로는 불편을 자청하기도 한다. 중학생'초등학생 자녀를 둔 이영민 씨는 일부러 차량용 내비게이션을 떼어놓고 캠핑을 떠난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이동하면서 지도를 찾아보거나 출발 전에 인터넷에서 여행 경로를 출력해서 가는 것이 아이들의 방향 감각과 공간 인지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이 씨는 "운전을 하다가 길을 놓쳤는데 유심히 도로 이정표를 보고 있던 작은아이가 정확히 안내해준 일이 있었다"며 "캠핑은 아이들의 긍정적 사고, 자립심 함양에 도움을 주는 교육활동이기도 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캠핑장에서의 에티켓과 안전수칙 준수에 대해서도 빠트리지 않고 당부했다. 이주희 교수는 "캠핑장에서 꼭 지켜야 할 사항에 대한 교육을 지방자치단체, 관련 기관에서 확대해야 한다"며 "여행지의 지방자치단체가 만든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사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서영학 씨는 "거창하게 장비를 꾸려와서 흥청망청 놀다가 쓰레기만 남기고 떠나는 일부 캠핑족을 보면 캠핑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며 "불편한 캠핑은 참을 수 있지만 불쾌한 캠핑은 되지 않도록 서로 주의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대출대도(http://cafe.naver.com/gonowcamp)

='대구 출발 대구 도착'을 기치로 내걸고 활동하고 있는 캠핑'여행 동호회로 지난해 7월 결성됐다. 캠핑이 새로운 여행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현재 2천700여 명의 회원이 가입돼 있으며, 하루 7천여 명이 방문한 날도 있다는 게 카페 운영진의 귀띔. 회원들은 봄'가을 두 차례 정기 캠핑뿐만 아니라 수시로 번개 캠핑을 다녀오고 있다. 또 파워뱅크(전원공급장치) 등 캠핑용품을 스스로 만드는 모임도 자주 갖는다. 카페 운영진은 "캠핑 정보는 인터넷에 넘쳐나지만 정작 대구시민들을 위한 구체적인 정보가 부족한 것 같아 카페를 만들었다"며 "초보자 캠핑 교실, 오프라인 카페도 운영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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