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4일 대구 수성구 대흥동 대구스타디움몰 내 한 가구매장. 매장 임차인 측인 A가구의 B(42) 이사와 C(37) 부장이 임대인 측인 D건설의 E씨(37) 에게 폭력을 휘둘러 다리에 부상을 입혔다. 발단은 E씨가 A구와 가까운 곳에 같은 브랜드의 가구점이 들어올 것이라고 알리는 공문을 들고 찾아오면서 시작됐다. B이사와 C부장은 영업 손실의 우려가 있다고 항의하는 과정에서 공문을 당장 가져가라며 E씨를 밀치면서 몸싸움을 벌였다. 경찰 조사 결과 대구스타디움몰의 운영자인 D건설이 같은 업종의 매장을 개점하려 한 것이 폭력사태의 발단이 된 것으로 드러났다.
거래관계에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한 '갑'의 횡포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갑은 독과점 지위를 이용해 약자의 위치에 있는 '을'에게 불공정한 거래를 요구하거나 본점과 대리점의 수직적인 관계 속에서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특히 을의 위치에 있는 대리점도 또 다른 '을'인 영업사원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을 지우고 있다.
◆독과점 지위 악용, 불공정거래 강요=대구 달서구 본리동에서 스크린 골프장을 운영하는 남모(56) 씨는 시설물을 공급'설치하는 G업체의 이해할 수 없는 거래방식에 분통을 터뜨렸다. 최근 새로운 모델의 기계를 설치하기 위해 계약을 하면서 '정식 계약서'와 '영수증' 없이 무작정 기계 값을 선입금 하라는 말을 대구경북 판매담당자로부터 들은 것.
남 씨는 2011년 11월 스크린 골프 기계 7대를 2억7천여만원에 구입한 뒤 영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불과 2개월 만에 새로운 모델이 나왔고 이를 찾는 손님들의 요구는 늘어갔다. 결국 새 모델 3대를 보상판매를 통해 1대당 2천50만원에 구입하려고 나섰다.
그러나 이달 10일 G업체 판매 담당자는 정식계약서 없이 백지를 가져와 모델 넘버와 간단한 계약 내용을 직접 쓰고는 남 씨에게 도장만 찍게 했다. 또 기계설치 전에 6천만원을 모두 입금하고 영수증은 기계설치 후에나 주겠다고 했다. 남 씨는 G업체 대표이사의 도장이 찍힌 계약서를 쓴 뒤 계약금을 넣고, 이후 기계가 설치되면 잔금을 치르는 방식을 원했지만, 돈을 입금하기 전에는 기계를 설치해줄 수 없다는 말만 들어야 했다.
남 씨는 "G업체의 시장점유율이 80%가 넘다 보니 점주들은 종속적인 위치에 있다"며 "G업체의 거래방식에 따르지 않고 밉보일 경우 영업을 중단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느낀다"고 했다.
G업체의 대구경북 보상판매 담당자는 "지금까진 3, 4일 전에 입금이 완료돼야 본사에서 기계를 가져와 설치한 뒤 영수증과 계약서를 제공하는 방식이었다"며 "앞으로 본사 이름의 새로운 계약서를 만들어 기계설치 후 잔금을 치르는 방식으로 거래방식을 개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을' 아래 또 다른 '을'=대구 수성구 만촌동에서 우유 유통영업사원으로 일하고 있는 장모(44) 씨는 판매할 수 있는 물량 이상을 할당하는 일명 '밀어내기'에 고통을 겪고 있다. 특히 신제품이 출시되면 본점에서 대리점으로 물량을 떠넘기고, 대리점은 할당량을 정해 영업사원에게 다시 부담을 지우고 있다.
최근 출시한 한 신제품의 경우 소비자 가격은 1천300원 정도로 매일 4, 5상자(1상자 28개)가 대리점 한 곳에 할당된다. 공장도 가격이 700원인 이 신제품을 대리점은 900원에 납품받아 영업사원을 통해 슈퍼 등 소매점에 1천100원에 공급한다. 자체 할인행사나 신제품 2개에 증정용 요구르트 1개를 묶어 파는 등 판촉을 벌여도 신제품은 인지도가 부족하기 때문에 절반도 팔지 못하고 버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대리점 한 곳당 신제품 하나에 많을 땐 한 달에 100만원가량의 손해를 보기도 하는데, 이는 다시 영업사원에게 전가된다.
특히 지난해 '밀어내기'가 심했다. 2011년 구제역 사태 이후 소들이 죽어나가자 무리하게 공급물량을 확보하면서 공급과잉이 된 것이 원인이었다. 당시 밀어내기로 인해 대리점에서 판매할 수 있는 한계물량의 2배까지 할당되기도 했다. 자체 할인행사를 하거나 1ℓ에 2천400원 하는 우유를 포장만 바꾸어서 1천600원의 저가우유로 공급하는 등 한바탕 난리를 겪었다.
장 씨는 "우유 유통영업사원은 갑인 본점과 을인 대리점보다도 더 아래에 있는 '병'이다"며 "본사부터 내려온 물량 밀어내기는 수직 구조의 맨 밑바닥의 영업사원에게 그대로 떠넘겨진다"고 말했다.
유선통신회사 서비스기사로 일하는 조모(33) 씨는 줄어드는 수익과 높아지는 업무 강도에 혀를 내두른다. 본사에서 적자를 줄이기 위해 인터넷 회선 개통 등에 붙는 수수료(인센티브)를 일방적으로 깎았다. 2년 전만 해도 1건당 2만~5만원이던 수수료는 최근 5천~1만원으로 일방적으로 인하됐다. 본사에서 센터로 가입유치 할당량이 내려오면 이는 다시 직원들의 부담으로 되돌아온다. 그래서 인터넷 회선을 설치하거나 수리를 담당하는 조 씨에게도 인터넷은 물론 계열사가 생산하는 휴대폰을 판매하는 영업업무가 강요된다.
조 씨의 경우처럼 서비스기사에겐 당일처리율이라는 업무평가가 적용된다. 이는 당일 오후 6시 이전에 설치'수리 요청이 들어온 것을 그날 처리하는 비율을 말하는데, 당일처리율이 낮으면 수수료가 차감될 수 있기 때문에 오후 9시까지 근무하게 된다. 심지어 당일처리율을 높이기 위해 그날 처리한 것으로 전산을 조작하고 실제론 다음날 일을 마무리 짓는 편법이 이뤄지기도 한다.
공정거래위원회 대구사무소 이시완 경쟁과장은 "수직적인 지위와 유통구조상의 종속 관계 속에서 직위를 남용하고 피해를 떠넘기는 등의 불공정한 거래가 벌어진다"며 "불공정 거래를 줄이기 위해 가맹점업체의 정보공개서 등록률을 높이고 지역의 소상공업지원센터를 통해 예방교육을 강화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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