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대구 수성구 범어동 동도초등학교 옆 단층 상가건물(약 70㎡). 녹슨 철제 문 안으로 들어가자 주방이 딸린 작은 방이 나왔다. 찢겨 울퉁불퉁한 바닥 장판 위로 새끼발가락 크기만 한 바퀴벌레가 기어다녔다. 한편엔 구청에서 준 20㎏들이 쌀 한 포대와 라면 두 상자가 놓여 있었다. 거미줄이 달려 있는 천장 벽지는 누렇게 삭은 채로 너덜너덜 떨어졌고, 맨살을 드러낸 콘크리트벽에 새까만 곰팡이 꽃이 피어 있었다.
이곳에서 11년째 전세살이하고 있는 백두석(78) 할머니는 집을 옮기고 싶어도 전세금을 돌려받을 길이 없어 이사도 못한다. 그동안 건물과 토지의 주인이 각각 2, 3번 바뀌고 법원의 경매를 거치면서 할머니도 모르는 사이 전세권이 소멸했기 때문이다.
백 할머니는 2002년 7월 임대인이었던 A(88) 씨에게 2천500만원의 전세금을 주고 계약기간 2년으로 이 건물에 들어왔다. 할머니는 파지를 주워 모은 500만원에 은행에서 빌린 2천만원을 더해 전세계약을 맺었다.
계약이 끝나기도 전인 2003년 7월 건물과 토지의 주인이 B씨로 바뀌었다. 어느 날 A씨를 길에서 우연히 만난 할머니는 그제야 집을 팔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백 할머니는 "전세금은 어떻게 받을 수 있느냐"고 묻자 A씨는 "그대로 거주하고 있으면 돌려받게 된다"고 안심시켰다.
그런데 B씨는 1년도 되지 않아 2004년 초 파산을 했다. 이후 건물은 법원 경매로 넘어갔고 C업체가 낙찰을 받아 같은 해 4월 토지를, 7월 건물을 사들였다. 할머니는 경매가 이뤄진 사실도 몰랐다.
현재 소유주인 C업체 관계자는 "이전 부동산 소유주가 부도를 낸 뒤 대법원의 확정 판결을 받아 경매물을 회수했고, 채권자에게 배당을 이미 다 했기 때문에 백 씨의 전세금 2천500만원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할머니는 A씨에게서 전세금을 돌려받으려 하지만 A씨는 2003년 B씨에게 건물을 팔면서 전세금에 대한 부분을 승계했기 때문에 이마저도 쉽지 않다. 또 B씨는 파산 후 현재 사망한 상태이기 때문에 전세금을 요구할 수도 없다.
백 할머니에겐 2004년 경매 낙찰 2개월 안에 배당을 신청하는 방법이 있었지만, 당시 경매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기회를 놓쳤다. A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법원 판결을 받는 방법도 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소송비용이 없고 승소할 확률도 높지 않기 때문이다.
5년 전 디스크로 오른쪽 무릎 수술을 하고 난 뒤 지팡이로 겨우 걷는 등 거동이 불편한 백 할머니는 기초생활수급비 36만원으로 근근이 생활하고 있다. 주 5일 대구홀트종합복지관에서 주는 아침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 딸(44)은 7년 전 뇌종양수술을 받고 투병을 하고 있다.
백 할머니는 "몸이 불편해지면서 파지 줍는 일마저 그만둬 은행에서 빌린 원금과 이자를 못 갚고 있는 상황"이라며 "낡은 집에서 벗어나 영세민 임대아파트로 옮기고 싶지만, 전세금을 돌려받을 방법이 없어 걱정이 태산"이라고 했다.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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