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멜로·코미디·액션 연기 자유자재
# 미세한 감정 표현까지 능수능란
# '지 아이 조' '레드: 더 레전드' 등
# 연이은 할리우드 작품서 입지 다져
이병헌의 할리우드 진출작 '레드: 더 레전드'의 국내 반응이 좋다. 같은 주에 개봉한 김용화 감독의 '미스터 고'보다 스크린을 적게 잡고도 관객은 150% 정도 더 들었다. '레드: 더 레전드'가 '미스터 고'보다 더 좋은 흥행을 할 것이라고 기대한 이는 별로 없었다. 코믹과 액션을 결합한 영화는 아직 국내팬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장르이고, 이 영화에는 톰 크루즈나 브래드 피트 같은 확고한 스타가 출연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한 국내 반응을 보면 이병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국내 배우 가운데 할리우드에서 연속 출연한 배우는 이병헌밖에 없다. 과거에 박중훈이나 비가 출연했지만, 단발성에 그치고 말았다. 그런데 이병헌은 '지. 아이. 조' 시리즈 1, 2편(2009, 2013)에 이어 '레드: 더 레전드'에도 출연하면서 탄탄한 입지를 굳히고 있다. 출연 분량도 갈수록 많아지고 역할도 점점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레드: 더 레전드'에서는 앤서니 홉킨스, 헬렌 미렌, 존 말코비치, 브루스 윌리스, 캐서린 제타 존스 등 쟁쟁한 할리우드의 실력파 배우들과 함께했다. 명실상부하게 이병헌은 배우로서의 입지를 할리우드에서도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1995년 이병헌이 '런 어웨이'로 한국 스크린에 데뷔했을 때 그가 지금과 같은 배우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 이는, 야속하게 말하자면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연기가 어색한, 그렇지만 얼굴은 괜찮은 신인 배우 가운데 한 명일 뿐이었다. 그의 연기는 강한 임팩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부드러운 흡인력을 지닌 것도 아니었다. 다시 야속하게 말하면, 연기를 흉내 내고 있을 따름이었다. '누가 나를 미치게 하는가' '그들만의 세상' '지상만가' 등에서도 뚜렷한 흔적을 남기지 못했다.
이병헌이 연기자로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1999년의 '내 마음의 풍금'을 통해서였다. 때로 배우는 탁월한 상대역을 만나면 자신의 연기까지 변화하게 된다. 배역을 소화하는 능력을 상대 배우를 통해 배우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이병헌은, 연기라면 최고로 손꼽히는 전도연과 열연하면서 많이 변화되어 있었다. 10대 후반의 소녀가 흠모하는 첫사랑 이미지를 지닌 도시 출신의 선생 역을 평안하면서 흡인력 있게 소화한 것이다.
이후 이병헌의 연기는 많이 변했다. '공동경비구역 JSA'와 '번지점프를 하다'의 이병헌은 확실히 과거의 이병헌이 아니었다. 쟁쟁한 스타가 여럿 출연한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이병헌은 그 누구에게도 전혀 밀리지 않고 자신의 개성을 영화 속에 녹여냈고, 많은 이들이 지금도 최고의 멜로 영화로 꼽는 '번지점프를 하다'에서는 동성애라는 어려운 역할까지 소화해냈다. 그는 감정의 표현을 참으로 잘하는 배우라는 생각을 이때 나는 하게 되었다.
이병헌이 자신의 연기를 꽃 피운 것은 김지운 감독과의 만남 때문이었다. 김지운 감독과 이병헌은 '달콤한 인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악마를 보았다' 등 세 편을 연속해서 작업했다. 김지운의 초기 영화에서 주인공은 송강호였다면, 이후 영화의 주인공은 이병헌이었다. 송강호가 주로 코믹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면, 이병헌은 거역할 수 없는 슬픈 운명을 지닌 비장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냈다. 단연코 이병헌은 김지운 감독과 만나면서 스타에서 배우로 거듭나게 되었다.
지금까지 보여준 이병헌 연기의 절정은 '광해, 왕이 된 남자'라고 해야 할 것 같다. 2012년 개봉해 1천만 관객을 동원한 이 영화의 가장 큰 히어로는 류승룡이 아니라 이병헌이다. 이 영화에서 이병헌은 광해, 하선, 광해를 연기하는 하선 등 1인 3역을 했는데, 이병헌은 이 역할'들'을 모두 훌륭히 소화했다. 사실 진중한 이미지의 광해 역은 그리 어려울 것이 없다. 그러나 이와는 전혀 다른, 기방에서 걸쭉한 농담이나 하는 하선을 연기하기는 쉽지 않다. 정말로 어려운 것은 그런 하선이 광해를 연기할 때 진중함과 가벼움 사이에서 적절하게 조율하는 것인데, 이병헌은 어느 때는 가벼운 웃음으로 어느 때는 진중한 솔직함으로 이를 그려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 영화로 이병헌이 각종 영화상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지금도 이병헌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1990년대 중반, 광고에 등장한, 김원준과 함께한 모습이다. 당시 갓 데뷔한 인기 절정의 가수와 배우는 이후 전혀 다른 길을 가, 김원준은 몇 년 뒤 브라운관에서 완전히 사라졌지만, 이병헌은 여전히 성장하며 활동 폭을 넓히고 있다. 지금 이병헌 연기의 끝이 어디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는 멜로와 코미디와 액션과 누아르를 모두 소화한다. 이병헌 연기의 종착지가 어디가 될지도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는 한국과 아시아를 거쳐 할리우드에 입성했다. 명확한 것은, 이병헌이 43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성장을 멈추지 않는 배우이다.
강성률<영화평론가·광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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