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동순의 가요 이야기] 원조 '눈물의 여왕' 이경설(상)

가창력 뛰어난 막간가수 출신…노래'연기 병행

한국영화사에서 관객들로 하여금 줄줄 눈물을 쏟게 하였던 가장 대표적인 비극배우는 누구였을까요? 사람들은 입을 모아 함경도 함흥 출신의 배우 전옥(全玉'본명 전덕례)이라 대답할 것입니다. 전옥도 '항구의 일야' '눈 나리는 밤' 등 여러 악극과 영화에서 최루성 연기를 펼쳐 '눈물의 여왕'이라 일컫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전옥 이전에 이미 원조 '눈물의 여왕'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이경설(李景雪'1912∼1934)입니다.

이경설은 불과 열다섯의 나이에 은막에 데뷔해서 각종 영화와 악극에 출연하며 대중들의 최고 인기를 한몸에 모으고 활동하다가 갑자기 얻게 된 몹쓸 병으로 방년 22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기막힌 사연을 갖고 있지요.

이경설은 일찍이 1912년 강원도에서 출생한 뒤 곧 아버지를 따라 함경북도 청진으로 옮겨가서 살았습니다. 거기서 보통학교에 다녔고, 배우가 되기 위해 집을 떠날 때까지 살았습니다. 나중에 병이 들어 1934년 서울에서 낙향해 세상을 떠난 곳도 청진의 신암동이었으니 청진은 이경설의 진정한 고향이라 하겠습니다. 소녀 시절, 이경설의 이웃에는 아주 단짝으로 지내던 친구가 있었는데 일찍 시집을 갔다가 한 해 만에 친정으로 쫓겨 와 고독하게 살다가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이경설은 친구의 죽음을 지켜보며 마음속으로 큰 충격을 받았고, 여성에게 극히 불리한 혼인제도에 대해 부정적 관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이 영향을 주었던지 배우가 되고 난 뒤에도 이경설의 표정과 연기는 슬픔으로 가득한 얼굴에다 가녀린 인상, 거기다 처연한 액션까지 보여주어서 부녀자 관객들은 이경설의 연기에 온통 울음바다가 되었다고 합니다. 걸핏하면 소외된 처지에서 마구 희생당하는 조선 여성의 삶에 대하여 이경설은 그 누구보다도 연민과 애정을 갖고 그것을 연기에 쏟아부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경설의 연기를 떠올리면 오로지 '눈물과 한탄' 두 가지입니다.

이경설은 청진에서 보통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와서 예술학교에 들어갔으나 곧 문을 닫았고, 고려영화제작소에 입사했지만, 그 회사마저 해체되고 말았습니다. 조선배우학교란 곳에 들어가서 작사가 왕평(王平'본명 이응호)과 동기생이 되었고, 이후 막역한 친구가 되었지요. 이경설은 여러 악극단에 단원으로 들어가 전국을 떠돌았습니다. 이 무렵에 굶기를 밥 먹듯이 했고, 아파도 돌보는 이 없이 무대에 올라야만 했던 슬픈 시절이었지요. 1924년 이경설이 참가했던 동반예술단도 흩어진 악극단 중의 하나입니다. 당시 악극단 공연은 신파극을 중심으로 무술, 기계 체조를 곁들여서 공연했는데 이경설은 여기서 가수이자 배우였던 신일선(申一仙)과 함께 노래와 연기를 계속하며 대중예술가로서의 경력을 쌓아갔습니다. 이경설의 나이 16세 되던 1928년 그 예술단도 해체되어버렸고, 이후 정착하게 된 곳은 김소랑(金小浪)이 이끌던 극단 취성좌(聚星座)입니다. 여기서 이애리수(李愛利秀), 신은봉(申銀鳳) 등과 함께 당대 최고의 여배우 트리오로 연기와 가창 두 분야에서 눈부신 활동을 펼쳤습니다.

1929년 이경설은 조선연극사, 연극시장, 신무대 등으로 활동의 터전을 옮겨 다녔습니다. 이경설이 세상을 하직하던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는 신무대 소속의 단원이었지요. 1920년대 후반 공연장 무대에는 연극의 막과 막 사이의 시간적 공백을 메워주던 막간 가수가 있었습니다. 이애리수, 이경설, 강석연, 신은봉, 김선초 등은 모두 막간 가수 출신들입니다. 1928년 무렵, 언론은 이경설을 이미 주목받는 배우로 지면에 널리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화차생활' '무언의 회오' '카추샤' 등의 연극에서 이경설의 명성은 드높아만 갔습니다. 이경설의 연기가 지닌 특징은 매우 똑똑한 세리프와 박력이 느껴지는 연기였다고 합니다. 함경도 출신의 억양이 느껴지는 독특한 화법이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연극시장 시절, 이경설은 그녀 한몸에만 집중되는 극단에서의 과도한 출연요청을 단 하나도 거절하지 않고 모두 받아들여 무대에 오르느라 온몸이 파김치가 되었고, 이 누적된 피로 때문에 결국 폐결핵에 걸린 것으로 추정됩니다.영남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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