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별별 세상 별난 인생] 유럽앤틱 생활용품 수집가 송현미 씨

20년간 모은 5만여 점, 세계 최대 박물관 열 것

팔공산 부인사 인근에 이색공간이 있다. '앤지스 커피와 앤틱 갤러리'다. 뉴질랜드에 사는 송앤지(현미) 씨가 20년 가까이 수집해 온 유럽 앤틱 생활용품들을 이곳에 풀어놓고 누구나 감상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다. 최소 80년에서 200년 이상 된 3만여 점의 유럽(영국) 앤틱 소품이다. 앤틱 소품들은 별다른 대화가 없어도 은근히 정겨운 오래된 친구 같은 느낌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 가치는 더욱 빛난다. 소품 하나마다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가만히 귀 기울여보면, 100년 전의 이야기들을 조곤조곤 전해주는 듯하다. 마치 영국의 어느 명문가정에 있는 듯한 생각이 든다.

◆앤틱 소품의 매력에 빠진 사람

"앤틱 생활 소품들은 골동품을 흉낸 낸 것이 아닙니다. 가구이든 생활 소품이든 우리보다 앞서 산 100~200년 전의 사람들의 손길과 숨결이 스며 있는 소중한 것입니다."

팔공산 수태골 부인사 아래 산비탈 길을 따라 뒤돌아 가면 숨은 듯이 '앤지스 커피와 앤틱 갤러리'가 있다. 황토집 같은 겉모습과는 달리 거실에 들어서면 3만여 점의 앤틱 소품이 진열돼 있어 '와~'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송앤지(현미) 씨. 그는 유럽 앤틱 생활용품 수집가다. 20여 년 동안 유럽지역을 여행하며 한 가지씩 모은 것이 무려 5만여 점에 달한다. 그중 일부를 지난 4월 팔공산 중턱에 전시공간을 마련,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앤틱 갤러리를 열었다.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 형식으로 운영하지만, 사실은 유럽의 앤틱 생활용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펴주는 구색 맞추기일 뿐이다. 이곳의 모든 제품은 유럽인 누군가가 사용한 앤틱 소품들이다. 커피잔도 모두 제각각이다. 꼭 같은 모양의 세트를 갖춰야 하는 우리나라 사고방식과는 전혀 다르다. 티스푼도 마찬가지다. 수백 개가 나란히 진열돼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 세월의 흔적이 있다. 송 대표는 "이곳은 돈을 생각하고 만든 공간이 아니다. 어릴 적부터 꿈꿔온 것을 실현하기 위해 수 십 년 세월 동안 차근차근 준비해 온 것"이라고 밝힌다.

 

◆수입의 20% 수집에 투자

그는 대구 토박이다. "여고 시절 어떤 잡지에서 강원도 진부령 알프스 산장에서 그림처럼 사는 부부의 살아가는 이야기에 대한 기사가 인생의 멘토가 됐다. "어른이 되면 나도 저런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대학(경북대) 졸업 후 결혼을 하고 30세 때인 1993년 뉴질랜드로 이민을 떠났다. 낯선 땅에서 정착하고 살아가기 위해 숨가쁜 삶을 살다 보니 어릴 적 그 꿈을 잠깐 잊고 있었다. 어느 날 뉴질랜드의 잡지를 뒤적이다가 앤틱 제품들을 소개한 기사를 본 순간, '아! 내가 소중한 꿈을 잊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잠재의식이 되살아났다. 그때부터 유럽 앤틱 생활용품에 빠져들었다. 앤틱 생활용품을 보는 눈을 기르기 위해 앤틱 전문가로부터 본격적인 공부도 했다. 수입의 20%를 앤틱 소품 수집에 투자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에 남편도 동의했다. 그렇게 모으기 시작한 것이 창고에 가득 찼다. 때마침 지난해 한국에서 지인이 연락해 왔다. '대구에서 커피 박람회를 하는데 앤틱 모음전을 열어달라'는 요청이었다. 흔쾌히 수락했다. 사비를 들여 3만여 점을 뉴질랜드에서 옮겨와 지난해 10월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제1회 대구 국제 커피 박람회'의 '월드 앤티크 커피 콜렉션'에 전시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관람객들이 앤틱 소품을 보며 좋아하는 것을 보며 '나 혼자 즐기는 것보다 모든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더 큰 행복'이라는 걸 깨달았다.

◆강연 요청 잇따르고 라디오 진행도

박람회를 마친 후 송 대표는 대학과 커피 관계자들에게 전시 제품의 기증이나 무료 임대 의사를 제안했다. 하지만,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문화의 차이였습니다. 정작 나 자신은 진솔한 마음이었음에도 그 사람들은 '설마 그 소중한 물품을 아무런 대가 없이 무료로 기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한국에 전시공간을 마련하기로 결정했다. 마침내 어릴 적 꿈이었던 강원도 진부령의 알프스 산장은 아니지만, 고향인 팔공산 산장에 정착한 것.

"저는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 많습니다. 경제적인 유산은 아니지만,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사물을 멀리 볼 수 있는 눈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리고 남다른 재능과 강한 정신력 등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들을 물려주신 부모님께 고마움을 느낍니다."

송 대표는 아직도 꿈과 끼가 많다. '남만큼 해서는 절대로 남 이상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뉴질랜드 이민 생활 19년 동안 자신을 버티게 해 준 좌우명이다. 그는 요즘 '커피를 통해 꿈을 이뤄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팔공산 '앤지스 커피와 앤틱 갤러리'는 '함께 만들고 함께 나누는 공간'이다. 유럽 앤틱 생활용품 전문가란 소문을 듣고 강연 요청도 쇄도하고 있다. 4월부터 KBS FM(89.7MH) 목요일 오후 1시 30분부터 '팝 스테이션'을 진행하기도 한다.

이제 오랫동안 간직해온 그 꿈을 펼쳐야 할 때다. 국내에 유일하면서 세계 최대 규모의 '앤틱 생활박물관'을 대구에 건립하는 것이 꿈이다.

사진·박노익 선임기자 noik@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