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포도 향기가 그리운 계절이다. 포도라면 충북 영동이 유명하다. 검붉게 익어가는 포도 향기를 찾아 충북 영동으로 여행을 떠났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충북 영동군 황간면 월류봉과 월류정이다.
원촌리의 초강천 물가에는 우암 송시열이 즐겨 찾던 명승지 '한천8경'이 있다. 이곳은 때 묻지 않은 시골 풍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한천8경은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는 아름다운 자연풍광과 우암이 한천정사를 지어 강학을 하였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월류봉, 화헌악, 용연동, 산양벽, 청학굴, 법존암, 사군봉, 냉천정을 한천팔경이라 한다. 제1경인 월류봉(月留峰)은 해발 400.7m의 봉우리로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봉우리를 타고 오른 달이 능선을 따라 강물처럼 흐르듯 사라진다고 해서 월류봉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월류봉을 감싸고 도는 초강천 강가에는 월류정(月留亭)이란 단아한 정자가 있다. 그날은 강물이 너무 불어 돌다리를 건널 수가 없어 월류정을 가까이서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멀리서 보아도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정자는 예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2006년에 세운 것이다. 후대 사람들이 만든 것으로는 가히 돋보이는 역작이었다.
주차장에는 '달도 머물다 간다는 월류봉'이라고 쓰인 대형 표석이 있었다. 또 한천정사와 유허비(충북기념물 제46호)가 있었다. 유허비는 1779년(정조3년)에 후손과 유림들이, 이곳에 은거하며 후진을 양성한 우암 선생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고 하였다.
우암 선생은 이곳에 머물면서 한 시대를 보냈다고 한다. 월류봉 앞에 한천정사를 지어 글을 쓰고 강론을 펼쳤다고 했다. 한천정사는 제대로 관리가 안 돼 이곳저곳이 허물어져 가고 있었다. 이대로 뒀다가는 머지않아 정사가 크게 훼손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월류봉은 원촌리 주차장 앞에서 보는 모습이 가장 멋지다.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며 휘어져 나가는 초강천 뒤로 송곳처럼 우뚝한 봉우리 5개가 부챗살처럼 펼쳐진다. 맨 왼쪽 봉우리 앞으로 월류정이란 정자가 날아갈 듯 앉아 있는 모습도 근사하다. 기막힌 자리에 화룡점정처럼 앉은 정자 덕분에 월류봉의 모습은 더욱 돋보인다. 월류봉 위에 달이 뜨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는 것이 안내자의 설명이다.
월류봉과 월류정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 한참을 바라보았다. 한 폭의 산수화 같았다. 보고 또 보아도 아름다웠다.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다니면서 문화재를 보고 그 멋스러움에 감탄하곤 한다. 비슷할 것 같은 건축물도 보는 각도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볼 때마다 느껴지는 감흥도 다르다. 우리 조상들의 멋과 지혜에 그저 감탄할 따름이다.
한천정사와 유허비를 찾아가는 곳곳에는 포도의 고장답게 포도가 탐스럽게 달려 있었다. 조금 있으면 달콤한 포도를 맛볼 수 있으리라.
이렇게 먼 길을 달린 이번 여행도 좋았다,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곳, 월류봉과 월류정. 나룻배라도 있으면 초강천에 띄워 노를 저으면서 시라도 한 수 짓고 싶었다. 대금산조 아니면 단소 한 자락이라도 듣고 싶었다.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바로 그곳이 무릉도원이었다. 그만큼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고 월류정과 초강천의 풍경에 푹 빠져있으니 어느새 날이 저물었다.
얼른 정신을 차리고 대구로 향했다. 돌아오는 내내 그 여운을 잊을 수가 없었다. 낮에 본 풍경들이 떠올랐다. 집에 돌아와서도 카메라 속에 담긴 풍경들을 다시 보고 또 보았다. 다시 보아도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아마 단풍이 드는 가을이면 지금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겠지.
윤혜정(자전거타기운동본부 팀장)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