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 기능과 외피 디자인

잇따른 원전 부품 비리로 인한 대규모 전력 부족 사태로 전력 수급 문제는 우리 생활의 큰 이슈로 부각되었다. 이러한 전력 부족 사태는 비단 올해만의 문제는 아니다. 삶의 질이 높아질수록 에너지 의존도는 높아져 전력 공급을 늘리기 위한 국가 차원의 근본적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정부에서는 전력 부족 사태를 맞아 국민을 대상으로 에너지 절약 캠페인과 피크 부하 시간대 절전 유도 등의 각종 대책 마련을 통해 당면한 에너지 난국을 헤쳐나간다는 복안이다.

전력 부족 여파는 직접적으로 우리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요즘 관공서와 업무용 건물을 방문해 보면 예전과는 다른 풍경을 어렵잖게 확인할 수 있다. 실내 설정 온도 상향 조정, 선풍기 병용 사용, 넥타이와 정장 대신 캐주얼 간편 복장, 점심시간은 당연히 소등이다. 이용자 관점에서 이 같은 인위적인 에너지 절감 노력에 동참하고 있지만 실상 우리의 생활을 담는 그릇인 건축물은 과연 이러한 이용자 측면의 노력에 부응하고 있을까?

수년 전 호화 청사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며 주목을 받았던 몇몇 지방자치단체 청사와 최근 신축된 우리 주변의 여러 건물을 살펴보면 그 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외피의 대부분은 비교적 단열성이 떨어지고 일사 투과율이 높은 유리로 마감된 경우가 많다. 건물 외피에 투명 재료인 유리를 적극 채택함으로써 높은 시각적 개방감과 현대적 디자인 감각을 살릴 수 있으며 커튼 월 공법의 적용으로 건설 과정의 건축비 절감과 시공 기간 단축이라는 이점이 있다. 물론 유리 건축의 단점인 열 성능을 보완하기 위하여 이중 유리와 흔히 자동차 유리의 필름 코팅 처리(선팅) 기술과 같이 열'빛의 반사, 투과'흡수율을 조정하여 단열성을 높인 로이유리의 보급도 늘고 있다. 또한 창의 개폐 방식에서 전체 외피 면적 중 대부분을 열 수 없는 고정 창으로 설계함으로써 실내 발생 열량과 오염 공기를 외부로 원활하게 배출하는 자연 환기에 많은 제약이 따라 당연 재실자의 열적 쾌적성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자연에 철저히 순응하여 설계된 과거의 우리 전통 건축물을 살펴보면 오늘날 현대 건축물이 추구해야 할 방향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전통 가옥에서는 북쪽의 건물 뒤 나무 그늘의 맑고 시원한 공기가 북측 개구부를 통해 대청마루로 유입, 실내를 식힌 후 남측 마당으로 빠져나가는 자연 환기 기법을 적극 활용하였고, 적정 길이의 지붕 처마는 실내로의 일사 유입을 효과적으로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필요할 경우 대청마루의 북측과 남측에 면한 개구부의 창호는 모두 열어젖히거나 포개어 천장으로 매달아 올리는 형식으로 개방함으로써 열고자 할 때 유효 개구 면적을 극대화하였다. 자연에 순응한 건축을 구현함으로써 쾌적한 실내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 인위적 환경 제어 기술을 보유하게 되면서 설계의 근본 원칙과 철학이 크게 바뀌기 시작하였다. 자연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건축적 설계 기법을 과감히 던지고 에너지에 의존한 냉난방이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이다. 즉, 전력 부족 시대에 에너지 공급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정상적으로 그 건물이 운영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에너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는 여건에서 창을 열어 자연 환기를 도입하고 싶어도 고정 창으로 설계됨으로써 마치 창을 열 수 없는 유리온실 속의 우리 자신을 보는 것 같아 무척이나 아쉽다. 전통 건물과 같이 자연 환기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창호 설계 기법의 도입이 시급하며, 우리 선조들의 전통 건축에 적용된 기법의 장점들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볼 시점이다.

과거 여름철에 전력 회사 사옥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예비 전력 부족으로 에어컨도 가동하지 못한 채 선풍기와 부채로 더위를 식히며 업무를 보고 있었다. 전면 고정 창으로 설계된 건물 속에서 마치 찜통과 같은 환경 아래 땀을 훔치며 일하고 있는 직원들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일반적으로 건물 설계자가 자신이 설계한 건물에서 살게 되는 확률은 지극히 낮다. 그래서 이용자의 불편 사항을 인지하지 못하였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건물 이용자의 불편 사항을 외면한 건축 설계는 하루바삐 재고되어야 한다. 수요자 입장에서 기능을 만족시킨 외피 설계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최동호/대구가톨릭대학교수·건축학부 dhchoi2@c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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