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된 국어사전/이윤옥 지음/인물과 사상사 펴냄
30여 년을 일본어 공부를 한 학자가 지은 책이다. 부제는 '표준국어대사전을 비판한다'이다. 저자가 처음 지은 책 제목이 '표준국어대사전을 불태워라'였다면 긴 설명이 필요 없지 않은가? 제목과 연결지으면 이 책이 담고 있고 담으려 했던 의미가 들어온다.
이 책은 생활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일본말 오용 사례를 밝히고, 이 문제에 대해 부실하고 안이하게만 대응하는 국립국어원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책이다. '유도리'나 '단품' '다구리'와 같이 일본말 찌꺼기인 줄 뻔히 짐작하면서도 쓰는 말뿐만 아니라 '국위선양' '잉꼬부부' '다대기' '기합' '품절'처럼 우리말인 줄로만 알고 쓰던 일본말 찌꺼기의 역사와 유래, 쓰임새에 대해 낱낱이 밝히면서 국어사전을 만드는 기관에 대한 애정 어린 비판을 전한다.
저자 이윤옥은 일본 속의 한국 문화를 찾아 왜곡된 역사를 밝히는 작업을 꾸준히 해오면서 우리말 속에 숨어 있는 일본말 찌꺼기를 다룬 '사쿠라 훈민정음'을 펴냈다. 이 책 '오염된 국어사전'은 국어사전도 밝히지 못한 일본말 찌꺼기의 역사와 유래를 추적한 두 번째 책이다. 생활 속에 더욱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일본말 오용 사례를 밝히고, 이 문제에 대해 부실하고 안이하게만 대응하는 국립국어원을 비판한다.
각종 기념식장이면 꼭 해야 하는 것이 '국민의례'다. 이 행사가 사실 일본 기독교단에서 제국주의에 충성하고자 만든 의식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더 구체적으로는 국민의례란 '궁성요배, 기미가요 제창, 신사참배'를 뜻하는 말로,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자발적으로 제국주의 침략 전쟁에 협력할 것을 표명한 바 있는 일본 교단이 출정군인, 상이군인, 전몰군인 및 유가족을 위해 그리고 대동아전쟁 완수를 위해 행한 기미가요 연주, 묵념 따위를 뜻한다. (본문 16쪽)
광복을 맞이하고 세대가 바뀌었지만 아직도 우리 삶 깊숙한 곳에는 그 뜻을 알면 도저히 쓸 수 없는 일본말들이 넘쳐난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이러한 잘못 쓰인 일본말 찌꺼기를 거르고 올바른 국어사전을 만들어가야 할 국립국어원조차 이 문제를 안이하게 생각하거나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어의 어원을 알 수 없다며 '모르쇠'로 일관하는 태도는 국가기관으로서 보여서는 안 되는 모습이지만, 그렇다고 국어의 모든 것을 국가기관에만 의지하는 것도 옳지 않다. 국민이 날카롭게 감시하지 않은 잘못도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맥락에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 잘못된 일본말 사용 사례를 감시하는 감시자의 눈으로 이 책을 썼다.
이 책은 일본에서 온 말이니 쓰지 말아야 한다고 무턱대고 주장하기보다 일본말 찌꺼기를 순화해야 하는 필연성을 제시해 읽는 이가 스스로 일본말 찌꺼기 사용에 대해 각성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일본말 찌꺼기를 주제로 한 기존 책들과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또한 저자는 오래전 일본에 한자 문명을 전파했던 우리가 지금은 오히려 일본식 한자를 쓰고 있다는 점을 밝히면서 문화'예술의 측면에서 앞서 갔던 민족의 자존심까지 구겨지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저자는 이외에도 일본말로 잘못 분류한 한국어, 국어사전에 실린 일본말과 실리지 않은 일본말들을 하나하나 지적하며, 순화하라고 표시해놓고 그 이유를 밝히지 않거나 예전에 쓰던 한자를 버리고 일본 한자로 바꿔 써 일본말로 정의 내리는 '표준국어대사전'의 무원칙을 고발한다. 국위선양, 국민의례, 멸사봉공, 서정쇄신, 택배, 달인, 추월 등 일본색이 짙은 말들이 버젓이 나돌아다니는 원인이 바로 '표준국어대사전'의 부실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문제점을 지적한 단어들은 이 밖에도 표구, 간벌, 동장군, 가교, 수목원, 고참, 석패, 분재, 수선, (입원)가료, 대미, 모두(발언), 시건장치 등 수없이 많다. 312쪽, 1만3천원.
이동관기자 dkd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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