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대한민국에 단식 열풍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만인의 평생 숙제'라는 다이어트의 방편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의 핫 트렌드로 자리 잡은 '힐링'의 인기몰이에 힘입은 바가 더 크다. 잘 먹고 잘 사는 방법의 하나로 단식이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영양 과잉의 시대에 스스로 '배고픔의 미학'을 즐기는 이들을 만나봤다.
◆잘 먹고 잘 사는 길
대구시청 공무원인 박창기(58) 씨는 단식 경력이 40년에 가깝다. 대학생 시절, 위와 장이 좋지 않았던 게 계기였다. 약을 계속 복용하면서 느꼈던 부작용은 물만 마시는 '완전 단식' 사흘 만에 깨끗이 사라졌다. 천근만근이었던 몸은 날아갈 것만 같았고, 정신도 덩달아 맑아지는 등 효과를 톡톡히 봤다.
박 씨는 이후 매년 한 차례 일주일씩 단식을 실시하고 있다. 올해는 이달 중순에 삶은 토마토와 양파를 갈아 만든 즙만 하루 2번, 일주일 동안 마시는 금식을 단행했다. 박 씨는 "포도'현미'효소를 이용한 단식도 여러 번 해봤는데 효과는 완전단식이 가장 큰 것 같다"며 "물만 마신 지 3, 4일이 지나면 몸 속 노폐물이 완전히 빠져나가는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이상학(55)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소 객원연구위원 역시 단식 예찬론자이다. 그는 8년째 연간 한 차례 일주일씩 효소를 마시는 단식을 하고 있다. 이 연구위원은 "굳이 단식원을 찾지 않더라도 의지만 있으면 사회생활을 하면서 단식 체험을 충분히 할 수 있다"며 "단식 기간 동안 명상을 함께하면 정신적으로 성장한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단식'자연식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는 사단법인 '몸과 문화'(www.bnc.or.kr)가 해마다 열고 있는 '심현정 치유단식'에도 매번 신청자가 넘쳐난다. 올해 제16기 프로그램은 이달 26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팔공산온천관광호텔에서 열린다. 전문가들의 강의와 함께 풍욕(風浴), 냉온욕, 된장찜질 등을 배울 수 있다. 몸과 문화 박성미 간사는 "치유단식의 취지는 '내 몸은 내가 치유한다'는 것으로 해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단식의 효과가 좋아 다시 찾았다는 분들이 많고, 각종 암 등 중병의 치료를 위해서 오는 경우도 꽤 있다"고 전했다.
단식요법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전부터 난치병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자연요법으로 이용돼 왔다. '의학의 아바지' 히포크라테스는 '속을 비워두는 것이 병을 고치는 방법'이라고 했고, 간디는 '단식은 우리의 신체를 깨끗이 정화시켜 정신적 재탄생을 가져다준다'고 격찬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무작정 단식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단식을 시작하기 전 실제 단식 목표기간과 비슷한 기간만큼 감식기(예비단식 기간)를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신체 내 대장의 급격한 수축을 막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6일 단식 예정이라면 감식 첫날의 식사량은 평소의 7분의 6, 둘째 날은 7분의 5, 여섯째 날은 7분의 1 정도로 한다는 것이다.
또 단식이 끝난 뒤 먹는 회복식은 단식치료의 성패를 결정한다고 할 만큼 중요하다. 단식일의 2배 정도 기간 동안 점차 식사량을 늘려나가는 것이 좋다. 소량의 유동식에서 시작해 차츰 연식, 경식, 일반식으로 옮겨 간다. 떡, 빵, 과자류는 단식 5배 일수까지 가능한 한 섭취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간헐적 단식' 열풍
최근 TV 프로그램에서 잇달아 소개되면서 화제를 모은 '간헐적 단식'(intermittent fasting)은 단식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을 크게 증폭시켰다. 인터넷에서 '간헐적 단식'을 검색하면 수많은 경험담과 정보가 쏟아지고, 서점가에도 관련 서적이 여럿 출간됐다.
간헐적 단식은 5대 영양소를 골고루 하루 세 끼 먹어야 건강할 수 있다는 기존 상식을 뒤엎는다. 마음 가는 대로 먹어도 체중 감량에다 노화 예방까지 가능하다고 소개한다. 일반적으로 단식 후에는 음식에 대한 열망이 더 커져 폭식으로 이어지고, 결국 단식 전과 같은 몸 상태가 되는 일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간헐적 단식 방법은 크게 '16:8 법칙' '5:2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 '16:8 법칙'은 전일 오후 8시 이후부터 당일 아침을 거르고 16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에서 낮 12시에서 오후 8시까지 8시간 동안 두 끼를 먹는다. '5:2 법칙'은 일주일에 닷새는 평소대로 먹고 이틀은 아침'점심을 거르고 저녁 식사만 하는 방법이다. 공복 시에는 필요한 에너지 공급을 위해 체내 지방이 연소되는데, 공복 시간을 최대한으로 유지함으로써 식사 횟수'식사량을 줄여 다이어트 효과를 보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와 관련,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의 마크 매트슨(Mark Mattson) 교수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일주일에 하루 500㎉를 줄이는 간헐적 단식이 알츠하이머'치매'기억력 상실 등의 발병을 지연시킨다는 주장이었다. 생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간헐적 단식을 한 개체들의 경우 알츠하이머와 같은 퇴행성 징후가 늦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질병을 예방한다는 이유로 간헐적 단식에 나서는 이들이 많아진 것은 아니다. 단식 시간만 잘 지키면 마음껏 먹어도 된다는 점이 오히려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한 달째 간헐적 단식에 도전하고 있다는 박성준(58'대구 수성구 중동) 씨는 일주일에 이틀은 음식을 전혀 섭취하지 않지만 나머지 5일은 평소대로 식사를 한다. 고기와 술을 곁들이기도 한다. 하지만 체중은 78㎏에서 74㎏으로 줄었다. 박 씨는 "TV에서 간헐적 단식 사례를 본 뒤 과체중에서 벗어나야겠다 싶어 시작했다"며 "단식을 하고 난 다음 날에는 폭식할 것 같지만 오히려 조금만 먹어도 포만감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비교적 부담없이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래도 유의할 점은 있다. 공복 후 첫 식사로 라면, 피자, 통닭 등 고열량 음식은 금물이다. 며칠 간의 고생이 물거품으로 끝나기 십상이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단식 성공담을 보면 양질의 괜찮은 음식을 충분히 먹게 되면 인스턴트 음식에 대한 욕구가 줄어들고 식사량도 감소한다는 내용이 많다.
◆'단식 효과' 논란
간헐적 단식법은 영국 BBC방송의 프로듀서이자 의학박사인 마이클 모슬리가 다큐멘터리('먹고 단식하고 장수하라')와 책을 통해 소개한 뒤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우리 자신도 모르게 간헐적 단식을 이미 실천하고 있을 수도 있다. 바쁜 현대인들이 흔히 하는, 아침을 거르는 생활습관과 비슷한 까닭이다. 저녁 늦게까지 술자리를 즐기지 않는다면 매일매일 간헐적 단식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간헐적 단식을 비롯한 단식 요법의 효과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갈린다. '채널A'에서 '이영돈의 논리로 풀다'를 진행하고 있는 이영돈 PD는 방송에서 일반인 참가자들과 함께 한 달간 직접 간헐적 단식을 체험했다. 이 PD는 "방송 후에는 단식을 하지 않지만 식탐하는 버릇이 고쳐져 추가로 2㎏가량 체중이 줄었다"며 "요즘은 배가 고프다고 해서 마구 챙겨 먹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는 또 "먹을거리 생산을 위해 많은 화석연료가 필요한 점을 고려하면 단식은 자연환경 보호에도 도움이 된다"며 "간헐적 단식은 가치 있는 도전으로 본다"고 했다.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단식이 한때 지나가는 유행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단기간 효과는 있을 수 있지만 근본적인 치료책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비만클리닉을 맡고 있는 계명대 동산병원 가정의학과 서영성(49) 교수는 "과식해서는 장수가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단식이 장수를 보장한다는 연구결과도 없다"며 "간헐적 단식은 아직 근거가 확실하지 않은 만큼 의사로서 환자에게 권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는 이어 "비만클리닉을 찾는 환자 가운데 밥을 많이 먹어서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다이어트를 위해선 커피 믹스, 탄산음료, 술 등 비만의 주된 이유가 되는 식사 이외의 간식을 끊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당뇨환자 등 지속적 영양 공급이 필요한 환자는 단식을 피해야 한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지속적인 운동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단식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한 유명 헬스 트레이너는 '16:8 간헐적 단식'을 통해 체지방이 감소하고 근육량이 늘어나는 효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미 탄탄한 몸을 만들어놓은 상태에서 운동을 꾸준히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지적이다. 새로운 유행 다이어트 방식에 자꾸 눈길을 돌리는 것보다는 몸에 좋은 음식을 적지만 효율적으로 먹고, 땀을 흘리는 게 낫다는 이야기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