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4년 오스트리아 화학자 오트마르 자이들러는 유명한 화학약품을 세상에 선보였다. 유기염소 계열의 합성 화학약품인 DDT다. 지구 상에 DDT의 존재를 각인시킨 것은 살충제다. 1940년대 초 모기나 이, 감자잎벌레 같은 해충을 죽이는 DDT 연구에 성공하면서 유명해졌다. DDT가 나오자마자 뎅기열, 말라리아, 황열병 등 모기로 인한 감염성 질병의 예방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2차대전 참전 군인들에게 이 백색 가루 살충제는 해충 박멸의 수훈갑이었다. 해방 무렵과 6'25를 거치며 우리도 DDT 세례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DDT의 존재는 벼룩과 빈대, 이로부터의 해방을 뜻했다. 벌레 물린 데나 상처가 헌 데도 뿌렸고, 하수구나 물웅덩이는 어김없이 DDT 세례를 받았다. DDT의 인기는 1960년대에도 숙지지 않아 소독약의 대명사로 통했다. 1960년대 후반 환경오염과 인체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DDT가 사용 금지됐지만 1970년 미국국립과학원 회보가 "극소량을 복용한 사람은 DDT에 큰 빚을 지고 있다"고 평가할 만큼 해충 박멸에는 탁월했다.
과거에 비할 수 없을 만큼 개인위생 상태가 좋아진 요즘 이나 옴 감염자가 늘고 있다고 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2007년 3만 7천 명 수준이던 옴 환자가 2011년 5만 2천여 명으로 44%가량 증가했다. 특히 요양 시설에서 지내는 노인층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건강관리협회가 전국 초등학생 3천여 명을 조사해보니 머릿니가 발견된 아동이 1.77%에 달했다. 2011년 감염률 4.7%보다 낮아지긴 했으나 머릿니가 아이들을 괴롭히는 해충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옛 사람들은 머릿니를 '반풍자'(半風字)라고 불렀다. '이 슬'(虱)자 모양이 바람 풍자의 절반을 떼낸 모양과 같다고 해서 반풍자다. 방랑 시인 김병연의 한시에 반풍자를 의인화한 슬시(虱詩)도 있다. '먼 길 가는 나그네 품 안에서 한낮을 근심하고(遠客懷中愁午日) 주린 사람 배 위에서 새벽 뇌성 소릴 듣네(窮人腹上聽晨雷).'
전문가들은 위생 수준이 높아졌지만 이와 옴의 증가는 단체 생활 등 감염 환경이 조성된 탓이라고 보고 있다. 촘촘한 참빗도 당해내지 못한 머릿니와 서캐, 옴 등 후진국형 감염병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점에서 당국의 예방과 관리가 시급하다. 이나 옴 때문에 몸을 긁적이는 모양새를 다시 볼 요량이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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