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여자아이들은 회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남자아이들도 대략 마찬가지이다. 무미담백하다고 표현하면 적당할 회의 맛이 아이들의 구미에는 별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려면 단순하고 자극적인 먹을거리에 쉽게 현혹되는 것이 아이다운 성정일 법하다. 하지만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에도 용돈 절약한 것을 모아 혼자 회를 사먹을 정도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이다. 저녁 반찬거리를 구하러 시장에 나오셨던 아버지께서 어떤 여자아이가 난전 횟집에 앉아 홀로 회를 사먹고 있는 광경과 마주쳤다. 뒷모습만 보았기 때문에 그 아이가 딸인 줄은 미처 확인할 수 없었던 아버지는 그저 '신기한 여자아이로군' 하고 생각하셨다.
그 여자아이가 바로 나였다. 그만큼 회를 좋아했던 어린 여자아이, 그게 바로 나의 유년기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리 거울을 들여다보아도 그때 나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다. 아직 한창 청춘인데 벌써부터 늙어간다고 자탄할 수는 없겠지만 거울속 내 얼굴은 여자아이의 그것은 아니다.
용돈을 아껴 모아 그 돈으로 혼자 회를 사먹던 그 여자아이, 다시는 볼 수 없다. 한번 흘러가면 돌아오지 않는 것, 시간은 바로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점은 예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린이들이 창조해내는 미술은 그 자체로 예술이다. 어른들은 흉내도 내지 못한다. 어린이의 예술은 그만큼 독창적이다. 하지만 어른들은 섣불리 아이들의 미술을 '내용 없는 아름다움' 정도로 치부하고 만다.
그러나 아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창작해낸 시를 모방하여 동시(어른이 쓴 어린이 시)를 쓰기도 한다. 미술은 어떤가? 어른들이 아이들의 미술 세계를 찾아 형상화하지는 않는다. 그 일에 별 의미가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동시를 쓰는 어른들도 많은데 그렇게 폄훼하면 예의가 아니다. 아이들의 미술 세계를 어른들은 결코 재현할 수 없기 때문에 '어른이 그린 어린이 그림'은 세상에 없는 것이다.
아이의 그림은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 세월의 무게가 찾아와 그를 더 이상 아이가 아니도록 만들어버리는 까닭이다. 따라서 아이들의 그림을 전시하고, 아이들의 그림들을 자료로 구축해두는 어린이 미술관은 꼭 있어야 한다. 아이들은 아이들에게서 배우는데, 유명 화가의 그림만 보여주며 감성교육, 인성교육을 도모해서는 결실을 맺기 어렵다
대구 아이들이 전국에서 가장 많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 보도보다는, '대구의 어린이 미술관이 전국 최고' 식의 기사를 보고 싶다.
정연지(대구미술광장 입주화가 gogoyonj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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