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시간이 다가올 무렵, 의자에 앉아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면 갑자기 옆에서 무릎이나 팔을 툭툭 치는 손길이 느껴질 때가 있다. 누군가 싶어서 돌아보면 다름 아닌 체셔다. 녀석은 뒷다리로만 자신의 몸을 지탱한 채 몸을 길게 늘여서는 앞발을 들어 옆에서 내 팔을 툭툭 친다. 심심하다고 놀아달라며, 혹은 맛있는 것 달라며 조용히 말을 거는 체셔만의 대화법이다. 그 모습이 사뭇 진지해 보여 웃기기도 하고, 마치 내 옆에서 친구가 손짓으로 날 부르는 행동과 비슷해서 이제 고양이가 아닌 사람 다 됐다며 나 혼자 체셔에게 농을 걸기도 한다. 그리고 나에겐 무엇보다 그 순간 내게 닿은 몽실하고 보드라운 체셔 발의 촉감이 너무나도 기분 좋기에 그 자그마한 행동 하나에서 행복감을 느끼곤 한다.
보드랍고 앙증맞은 고양이의 발은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고양이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다. 아가를 봤을 때 작고 귀여운 아가의 손을 한번쯤 잡아보고 싶어지듯, 고양이를 바라보다보면 동글동글하면서도 몽실몽실한 고양이 발의 매력에 빠져 만지고 싶은 충동이 자연스레 일어나곤 한다.
고양이의 발은 때론 정말 봉제인형의 발 같다. 솜뭉치처럼 보이기도 하고, 찹쌀떡처럼 보이기도 하는 동그란 모양의 발은 그냥 얼핏 봐선 발톱도 발가락도 찾아볼 수 없기에 여느 봉제인형들이 가지고 있는 동그란 발 모습 그자체이다. 가끔은 조물주가 고양이를 탄생시킬 때 만들다가 지쳐서 발만큼은 대충 반죽을 조물거려서 그저 동그랗게 빚어놓은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정말 공들여 만들어 놓은 조물주의 작품이다. 자그마한 털뭉치 사이사이에 앙증맞은 발가락이 존재하고 발가락 끝엔 몸을 보호하기 위한 장미 가시 마냥 매서운 발톱들도 숨겨져 있다. 하지만 평소엔 발톱이고 발가락이고 모두 숨긴 채 마냥 귀엽기만 한 동그랗고 몽실거리는 찹쌀떡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고양이의 발을 뒤집어 보면, 발바닥은 한층 더 매력적이다. 고양이 발바닥을 고양이 반려인들 사이에선 색에 따라 '포도 젤리' '딸기 젤리' 등으로 부르곤 하는데, 이렇게 젤리라고 부르는 게 충분히 이해될 만큼 질감도 말랑말랑하고 폭신하다. 아마도 높은 곳에서 잘 뛰어내리는 고양이의 습성에 맞게 몸에 올 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해 폭신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실제로 걸을 때마다 따닥따닥 바닥에 발이 닿는 걸음 소리가 나는 강아지들의 발과는 달리 털과 폭신한 젤리로 감싸져 있는 고양이의 발은 전혀 발소리가 나지 않으며, 높은 곳에서 뛰어 내릴 때도 늘 큰 소리 없이 사뿐하게 착지하곤 한다.
우리 집 체셔의 경우엔 핑크색 딸기젤리, 앨리샤는 핑크색에 검은 빛이 더해진 포도젤리를 가지고 있는데, 둘 다 장모종이라 이들의 알록달록한 젤리는 늘 털 속에 파묻혀 있곤 하다. 발등 부분의 폭신하고 몽실 거리는 부드러운 촉감과 폭신하고 말랑거리는 발바닥 젤리의 촉감 때문에 녀석들이 발을 만지는 것을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자꾸 손을 뻗어 잡아보게 된다.
내 옆에서 한잠에 빠져있는 고양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보면 나의 시선은 결국 고양이의 발끝으로 향한다. 큼직한 체셔의 핑크젤리 발은 묵직하면서도 푹신하고 따뜻한 곰발바닥이 생각나고, 잿빛 양말을 신고 있는 포도젤리 앨리샤의 발은 왠지 꼬질꼬질한 개구쟁이의 발인 것만 같아 귀여우면서도 웃음이 난다. 생각해보면 나긋나긋한 고양이 특유의 걸음걸이며, 꼼꼼하게 몸단장하는 모양새며 아옹다옹 싸움놀이 할 때의 주 사용도구는 모두 고양이의 발이다. 그래서일까? 고양이의 매력은 발끝에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먹을 수는 없지만 보기만 해도 달콤한 향기와 보드라운 촉감에 기분 좋아지는 고양이의 찹쌀떡 젤리의 무궁무진한 매력에 오늘도 난 푹 빠져있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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