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여행을 하면 좋은 점이 참 많다. 자연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우선 눈으로 풍경과 움직임을 파노라마처럼 즐길 수 있다. 같은 것이라도 계절 따라 달리 보이기도 한다. 다음은 코로 느끼는 호사다. 특히 5월 아까시꽃 향기를 맡으며 페달을 밟을 때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쾌적하고 시원한 공기 냄새는 어떻고. 그러나 가끔 시궁창 썩는 냄새 같은 역겨운 냄새를 맡을 때도 있다. 나는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달릴 때가 가장 기분이 좋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페달을 밟으면 바람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오염되지 않은 작은 샛강을 끼고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달릴 때면 기분이 상한가로 오른다. 그때는 하늘을 나는 기분이다. 마음속에 묻어둔 모든 근심과, 스트레스가 날아간다. 남을 미워하는 마음도 사라진다. 그래서 자전거를 배운 게 얼마나 다행스럽고 고마운지 모른다.
아침부터 비가 올 것처럼 보여 갈까 말까 고민하다 떠나기로 했다. 목적지는 예천. '초간정'과 '금당실마을'을 둘러보기로 했다. 초간정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지만 달리는 시골길은 아름다웠다. 저 멀리 '초간정 3.6㎞'라는 팻말이 있었지만 헛갈렸다. 마침 정자에서 쉬고 있는 어르신들께 여쭤보니 "이쪽으로 쭉~가이소"라며 길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한참을 달렸는데도 초간정은 보이지 않았다.
어렵게 초간정에 도착했다. 초간정 앞에 흐르는 계곡에서는 꼬맹이들이 부모님과 함께 물고기와 다슬기를 잡고 있었다. 정겨운 그 모습이 너무나 예뻐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영상은 돌아오는 내내 떠오르곤 했다.
초간정은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에 위치한 경북문화재자료 제143호로,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을 저술한 초간 권문해가 지어 심신을 수양하던 곳이다. 선조 15년에 처음 지어졌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중건했다. 인조 14년 다시 불타 1870년 중창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참 예쁜 정자였다. 주변의 기암괴석과도 잘 어울렸다. 또 정자 옆에는 몇 채의 기와집이 있었다. 기와집은 돌담이 예쁘게 둘러쳐져 있어 그런지 더 멋있고 단아해 보였다. 초간정 밑으로는 넓지도 깊지도 않은 계곡물이 흐르고 있었고 주변에는 수백 년 된 소나무들이 있었다.
비가 내렸다. 정자에 앉아 떨어지는 빗물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근심도, 미움도, 잡념도 다 사라졌다. 이런 곳에서 글을 읽고 시를 지으면 훌륭한 인재가 안 나올 리가 없을 것 같았다.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 그러나 내리는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더 머물렀다. 빗소리를 듣고 있으니 마음마저 느긋해져 빨리 돌아가야 한다는 조바심도 들지 않았다. 비가 그칠 때까지 한참 그곳에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금당실마을을 둘러보았다. 금당실마을은 조선 태조가 도읍지를 이곳으로 정할 것을 명했을 만큼 길지다. 전쟁과 흉년, 전염병이 없다는 삼재불입지지(三災不入之地)의 마을로 조선시대 양반의 기품이 그대로 배어 있다. 역사와 문화, 전통을 간직한 마을이고 곳곳에는 멋과 이름을 지닌 고택들이 있었다. 돌담에는 예쁜 꽃들과 청사초롱이 달려 있어서 더 아름답게 보였다. 이곳에는 대문이 없는 집이 많다. 그래서 마음 놓고 구경할 수 있었다. 또 민박이 가능해 가족이 함께 묵으면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밤이면 개구리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별빛도 아름다울 것 같았다. 그렇게 구경하다 보니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윤혜정(자전거타기운동본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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