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윤광석 무명전

무명(木綿)을 소재로 독창적인 옷을 지어온 윤광석 씨의 '무명전'이 커피명가 라핀카(수성구 국채보상로 953-1)에서 열리고 있다. 40여 년간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해온 윤 씨가 미술작가로 변신한 이후 첫 번째 작품전이다. 커피명가 창립 23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서 윤 씨는 바람에 풀잎이 나부끼는 것을 형상화한 '바람에 실려'를 비롯해 '이담이나무' '전원교향곡' '매물곶이' '채움과 비움' 등 작품 40여 점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회의 작품 주제는 '고향'이다. 윤 작가는 고향 전남 영광의 산과 바다, 나무, 바람, 햇빛, 갯벌, 그리고 낙조로 유명한 칠산바다 등의 자연과 그곳 사람들의 일상을 자연스럽게 담아내고 있다. 바늘로 꽃을 형상화한 작품도 있다.

작품에 사용된 소재는 무명과 바늘뿐이다. 자연 섬유 무명에 인위적인 바늘이 가미됐다. 옷 짓는 방식 그대로다. 판넬에 다양한 이음선과 솔기로 문양을 만들거나 재봉틀로 무늬를 그린 무명천을 씌워 놓고는 바늘로 생명을 불어넣었다. 코앞에 두고 들여다보지 않으면 여간해서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미세한 변화가 있다. 윤 작가는 이를 두고 "무명에 생명을 불어넣었다"고 표현했다.

윤 씨는 오래된 것을 살리는데 익숙하다. 이 시대 유물이 돼 버린 무명, 그 무명에 현대적 생명력을 부여하는 작업이 그의 일이다.

윤 씨가 무명을 접한 것은 15년 전. 보자마자 필이 꽂혔다. "'손맛'이 느껴졌어요. 그리고 어딘가 불규칙한 것이 좋았고 보아도 봐도 질리지 않았어요. 바로 이거다 싶었지요." 윤 작가는 이 부분에서 '운명'이라고 표현했다. 윤 씨는 무명에 대해 '검이불루 화이불치'(檢而不陋 華而不侈'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라고 했다. "무명은 그 질감과 색감이 담백하면서도 기품이 넘칩니다. 가위질하는 것이 미안할 정도죠."

윤 작가는 무명이 만들어지기까지 과정마다 일일이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는 만큼 사람 손 냄새가 난다는 점도 좋다고 했다. 목화솜을 따다 물레질로 실을 잣고, 그 실로 한 올 한 올 힘들게 베를 짜 만든 무명은 우리 전통문화가 담겨 있기도 하지만 사시사철 옷을 만들 수 있어 실용적인 면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자부심과 사랑이 깊다 해도 국산 무명은 생산이 거의 중단된 상태. 최근에는 거의 무명을 짜지 않는다. 스러져가는 무명의 끝자락을 틀어쥐고 있었던 전국의 할머니들은 서랍장에 몇 필씩 무명을 묵혀오기도 했다. 이젠 묵은 무명이 모두 윤 작가의 작업실에 와 있다.

15년 지기 커피명가 안명규 대표는 "윤 작가와 저는 닮은 구석이 많아요. 윤 작가는 패션으로, 저는 커피로 외곬의 삶을 살아온 점도 닮았고,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도 닮았다"고 했다. 이번 전시회는 18일까지 무명으로 지은 웨딩드레스 등 패션작품 10여 점도 함께 전시된다. 053)743-0892. 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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