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넷의 도전이었다. 보디빌더가 되고 싶다는 그의 말에 아내는 제 정신이냐며 펄쩍 뛰었다. 심지어 노망했느냐고 다그쳤다. 그런 아내에게 '해보고 싶은 거 하면서 살고 싶다'고 설득했다. 어렵게 출전한 첫 대회에서 그는 당당히 중년부 1등을 차지했다.
전국 최고령 보디빌더 서영갑(78'대구시 수성구 만촌동) 씨. 그가 운동을 시작한 이유는 왜소한 체구 때문이었다. 165㎝에 60㎏ 작은 체격으로 우람한 고등학생을 제압해 공부를 가르치기 어려웠다. 궁여지책으로 생각한 것이 운동이었다. 40대 초반 3㎏짜리 아령을 시작으로 운동에 입문했다.
몸은 정직했다. 소매 없는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나타난 그의 모습은 싱싱했다. 삼두박근은 살아있었고 율 브리너처럼 빡빡 민 헤어스타일에서는 강인함마저 뿜어져 나왔다.
교장에서 보디빌더로의 변신. 거짓말 같은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런 차림으로 다니면 모두들 쳐다보겠다.
"자랑하려고 이렇게 입고 다니는 게 아니다.(웃음) 피부를 자연스럽게 태우기 위해 소매 없는 옷을 입는다. 걸어가면 모두들 쳐다본다. 어떤 사람들은 만져 봐도 되느냐고 묻는다. 그럴 때면 즉석에서 포즈를 취한다. 다들 근육에 놀라고 내 나이에 또 한 번 놀란다."
-어떻게 보디빌더가 될 생각을 했나.
"나이 60에 보디빌더 세계를 알게 됐다. 물론 그동안 꾸준히 운동을 했다. 우연히 길을 가다 미스터 대구 선발 육체미대회가 열린다는 포스터를 보았다. 마침 대회가 열리는 날이 주말이어서 시민회관으로 무턱대고 갔다. 맨 앞쪽에 앉아 무대를 보고 있으려니 황홀 그 자체였다. 10대부터 40대까지 포즈를 잡는 모습이 마치 춤추는 듯했다. 조명이 그들의 조각 같은 구릿빛 몸을 비출 때면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퇴직을 하면 꼭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당장 참가해 볼까도 생각했지만 여러 가지 어려움 때문에 접어야 했다."
-무슨 어려움이 있었나.
"그 당시 나는 중학교 교장이었다. 손바닥만 한 팬티만 입고 무대에 선다는 것이 아내의 말처럼 노망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강렬한 무대 조명과 그 아래서 춤추듯 꿈틀거리는 근육의 아름다운 모습은 참기 어려운 유혹이었다. 퇴직하면 꼭 할 것이라고 다짐하며 꿈을 미루었다."
-그 꿈을 이루었다.
"1999년 8월 31일 퇴임하고 며칠 뒤인 9월 4일 바로 체육관에 등록했다.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서였다. 먼저 관장에게 '이 나이에 보디빌더가 될 수 있느냐'고 물어봤다.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내친김에 10월 말에 있는 대구보디빌딩대회에 나가고 싶다고 했더니 두 달 동안 바짝 해보자고 했다. 그때부터 몸을 만들고 포즈 연습을 했다. 7가지 포즈를 배워야 했다. 거울 보고 연습을 하다 보면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한 가지 목표를 정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어서 잠을 잊고 연습하고 운동했다."
-첫 대회의 감동은 잊히지 않을 것 같다.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1999년 10월 31일 내 나이 64세였다. 선수대기실에 들어가니 모두들 '아저씨는 어떻게 왔느냐'고 물었다. 선수로 왔다고 했더니 놀라는 눈치였다. 50세 이상 중년부에 참가했는데 100명 이상 되는 선수 가운데 최고령이었다. 떨렸지만 최선을 다하고 성적 발표를 기다리고 있으려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무대에 섰다는 사실만으로도 '대성공'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중년부 1등에 내 이름이 호명됐다. 객석에 앉아있던 아내와 자식들의 환호하는 얼굴이 아주 선명하게 보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60여 회 입상했다. 그날이 내 인생 최고의 날이었다."
-60이 넘어서 그런 용기를 낸다는 건 대단하다.
"도전을 망설이고 있는 은퇴자들에게 나를 보라고 말하고 싶다. 60대 중반에 시작한 보디빌딩은 나를 전혀 다른 세계로 이끌었다. 겁내지 말고 무엇이든지 시작할 것을 권한다. 시작만 해도 자신감과 자존감 진취성이 충만하게 된다. 이것이 젊어지는 방법이다."
-매스컴도 많이 탔다.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 강연 100℃에 참가하는 등 각종 방송에 많이 출연했다. 그때마다 '나이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으면 못할 게 없다고 말한다. 겁먹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부인의 병도 운동으로 고쳤다고 들었다.
"2005년 아내가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오른쪽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병원을 나와서 2년 동안 꾸준히 운동시킨 결과 지금은 활동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요즘 나의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매년 10회 정도 참가하는 전국대회에 따라다니면서 돕고 있다. 운동은 나에게 꿈을 주었고 아내를 일으켜 준 힘이 돼 주었다."
-몸을 위해 특별히 먹는 음식이 있나.
"하루에 닭 가슴살 한 조각과 계란 6개 견과류 과일 채소 등을 먹는다. 특별히 챙겨 먹는 것은 없고 영양제도 먹지 않는다. 된장찌개를 좋아한다. 운동하고 맛있게 먹는 것이 건강비결이다. 병원에서 신체나이를 검사하니 30, 40대로 나왔다."
-운동할 때 원칙이나 본인 나름대로의 비결이 있나.
"세 가지를 '걸어라'고 주문한다. 첫째 의지를 걸어야 한다. 두 번째는 그냥 걷는 것이다. 마지막은 무게를 걸어라이다. 몸에 압박을 주어야 운동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준비가 돼 있으면 그다음은 천천히 강도와 횟수를 올리면 된다. 절대 무리해서는 안 된다. 또 다른 사람을 그대로 따라 하지 말고 자신에게 맞는 운동을 해야 한다. 몸은 정직하다. 한 만큼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지금은 어떻게 운동하고 있나.
"새벽 4시면 일어난다. 라디오를 켜고 시니어 프로그램 들으며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목운동 손가락 발가락 운동으로 몸을 풀고 복근운동부터 한다. 오전 7시 30분에 밥을 먹는다. 운동은 하루 하고 하루 쉬는 패턴으로 하고 있다. 운동하는 날은 주로 오후에 한다. 지금도 4㎏ 모래주머니를 발에 차고 있다. 웬만한 거리는 무조건 걷는다."
-운동 외에 하는 일은?
"일주일에 두 번 어린이집에서 전통예절교육을 가르친다. 또 일주일에 한 번 문화지킴이 봉사활동도 한다.
-이보다 더 행복할 순 없을 것 같다.
"맞다. 나는 행복한 노인이다. 건강하게 아내와 함께 오래 살고 싶다."
김순재 객원기자 sjkimforce@naver.com
사진: 김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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