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생께!
술 마시기 좋아하는 사람은 춥거나 덥거나 주량을 고치지 않으며,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바쁘거나 한가하거나 중단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좋은 습관이든 나쁜 습관이든 습관은 고치기 어려운 것입니다. 저는 최근 뉴스를 통해 몇몇 사람을 보면서 잘못된 습관을 발견했습니다.
아시아나 여객기 사고, 노량진 상수도 공사장 익사 사건, 서해안 해병대 캠프 고교생들 희생 사건에다 며칠 전에는 공사 중인 한강 다리까지 무너져 내렸다지요. 모두 어처구니없는 인재라서 국민들의 공분(公憤)은 말할 나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더 문제더군요. 각 사건·사고의 책임자들이 TV에 나와서 똑같이 '유감(遺憾)'이라며 대국민 사과를 했습니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어느 연예기획사가 공정위의 시정명령에 대한 불만의 뜻으로 '유감'이라는 발표를 하더군요. 전자는 사과라 하고 후자는 불만이라 합니다.
고선생님, 유감이라는 말이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사전에는 '마음에 차지 않아 섭섭하거나 불만스러움'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마음보다 오히려 상대방에게 섭섭하거나 언짢은 마음이 들 때 쓰는 표현이라는군요.
2차 세계대전 때, 일본 국왕이 항복 선언에서 '짐은 제국과 함께 여러 맹방에 대해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이를 우리 정치권 혹은 고위층 사람들이 따라 쓰기 시작한 것이 버릇이 되었겠지요. 이처럼 국가 간에 외교상 논쟁이 일어 불만이나 항의 혹은 사과의 뜻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작년에 L국회의원께서 자신의 트위터에 P여의원을 지칭하여 '그년'이라는 막말을 썼다가 '불편한 분들이 있었다면 유감이다.'라는 말로 사과를 했었지요. 사전적 의미로 해석해 본다면 불편해하는 분들에게 오히려 섭섭하고 불만스럽다는 뜻이 되었으니 정말 어처구니없는 사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요즘 NLL 관련하여 나라가 쑥대밭입니다. 북한이 어떻게 보고 있을지 심히 걱정되네요. 김정은이 'NLL은 UN군이 일방적으로 그어놓은 선일 뿐 서해 5도는 북한 땅이다'라고 망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 우리가 반발하여 김정은이 '유감'이라고 한마디로 사과한다면 어찌해야 할까요?
진정성이 결여된 형식적인 사과는 대중들을 더 화나게 합니다. 마음을 담아서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라고 말하면 참 좋을 텐데 말이에요. 매스컴을 통해서 유감이라는 말을 너무 자주 들어서 이제는 입에 붙어 습관이 되어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사과하고 회전의자에 앉으면 금단추가 더욱 빛나겠지요.
멋진 지도자가 되는 방법 중에 하나는 잘못된 습관은 빨리 고칠 줄 아는 자기 교정 능력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고위직에 계시는 고선생(高先生)이 고 선생(苦先生) 되지 않아야 국민들도 좋아할 것입니다.
지거 스님 동화사 부주지·청도 용천사 주지 yong1004w@daum.net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