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쑥 찧어 붙이고 된장 바르며 아플땐 '상약' 처방 1순위

전문의료 도움받기 쉽잖아

일제 강점기 민초들이 병에 걸리거나 다쳤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바로 '상약'(常藥)이었다. 상약은 가정이나 개인이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 쓰는 약을 일컫는 말이다. 요즘으로 말하면 쑥을 찧어 붙이거나 된장을 바르는 따위를 말한다. 보다 확대해서 말하자면 담 아래나 뒤뜰, 들과 산에서 캐는 식물의 잎과 줄기, 뿌리가 바로 약이었다.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던 그 시절, 말 그대로 '죽을 병'이 아니면 의사를 찾을 수 없었다. 서민뿐 아니라 사는 형편이 그나마 괜찮은 사람도, 공부깨나 했다는 유식한 사람도 일단 아픈 증세를 보이면 상약부터 찾았다.

우선 상약 처방을 써서 병세를 지켜본 뒤 악화되면 형편에 따라 한약종상을 찾거나 의생이나 의사를 찾아갔다. 그러나 병세가 악화된다고 해도 전문 의료인력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산에서 굴러 떨어지거나 일제의 강제 노역에 동원돼 팔다리가 부러져도 제 돈 내고 치료비와 입원비를 감당할 수 없으면 평생 장애를 안고 살거나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병원을 찾아 서양의술의 도움을 받거나 의생에게 침'뜸 치료를 받는 것은 운이 좋은 경우였다.

그나마 형편이 괜찮은 집에서는 약국에서 한약을 사서 복용하거나 약재를 사서 처방전에 따라 달여 먹기도 했다. 당시 서양 의약품을 파는 약국에서도 한약을 판매했다. 나름대로 치료 효과가 입증된 약재들로 당시 일본 제약회사들이 만든 것이 상품화돼서 신문 광고에 실리기도 했다. 양약국에서 주로 판매한 한약으로는 태전위산(소화제), 영신환(소화제), 금계랍(말라리아 치료제), 활명수(소화제), 청고약(종기 치료제), 소연산(감기약) 등이 있었다.

비록 접근이 어렵기는 했어도 서민들은 서양의학에 대해 일종의 경외심을 갖고 있었다. '다 죽어가는 사람도 살렸다더라'하는 소문이 확대 재생산되면서 어떤 치료법이 있는지도 모른 채 그저 병원 문턱에라도 가보고 싶어했다. 특히 외과적 수술이 필요한 환자의 경우, 서양의학에 대한 기대는 거의 맹목적이었다. 그렇지만 일상적인 병치레는 거의 한의학이 도맡다시피 했다. 아울러 병이 상대적으로 심각한 경우에는, 가정에서 쓰는 처방 대신 한의사로부터 직접 한약을 처방받기도 했다.

김수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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