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교사들 中 '동북 3성' 현지 탐방

"고구려는 中 북방 소수민족 정권" 集安 고분 안내판에 뻔뻔히 설명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주의 사학자인 단재 신채호 선생이 남긴 명언이다. 최근 대한민국과 일본 축구 대표팀이 맞붙은 동아시안컵에서 '붉은 악마' 응원단이 내건 현수막에 이 글귀를 담아 더욱 유명해졌다.

최근 청소년들의 역사 인식을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한국사를 수능시험에서 필수과목으로 지정하자는 주장까지 나올 정도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의 말처럼 '역사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다. 역사 왜곡의 피해는 현재 진행형이면서 미래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다. 일본 정부가 주도하는 우경화 흐름뿐 아니라 관심이 숙진 중국의 동북공정도 반드시 챙겨봐야 할 것들이다. 대구 교사들과 함께 중국 동북3성을 찾아 동북공정 실상을 살펴봤다.(이해를 돕기 위해 중국 지명은 우리 발음으로 표현했다)

◆환인과 집안, 고구려의 고향

중국 동북3성은 요녕성, 흑룡강성, 길림성을 아우르는 표현이자 만주를 가리키는 다른 말이다. 중국 다른 지역과 달리 백두대간이 만들어낸 풍경이 한반도와 흡사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곳이다. 특히 고구려의 첫 도읍으로 추정되는 환인, 400여년 동안 고구려의 수도 역할을 한 집안은 만주 지역에서도 온난하고 강수량도 풍부해 예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곳으로 꼽혀왔다. 중국인들이 이 일대를 '소강남'(小江南)이라 부른 것도 그 때문이다.

지난달 24일부터 27일까지 대구 고교 교사들이 떠난 '중국 동북3성 탐방 연수'에 동행했다. 고구려 역사 현장을 돌아보고 동북공정의 실상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한 일정이었다. 이 지역 지리에 밝은 조선족 김모(35) 씨가 일정 내내 안내 역할을 맡아 매일 10여시간씩 버스로 이동하는 일정을 함께했다.

24일 찾은 곳은 환인. 고구려 첫 도성인 홀승골성으로 추정되는 오녀산성이 자리한 곳이다. 환인은 우리 독립운동사에서도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 곳이다. 이대희 교사(대건고)는 "1912년 민족학교인 동창(東昌)학교가 환인에 문을 열었는데 단재 신채호, 백암 박은식 선생 등이 이 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고구려 유적 답사 등을 통해 학생들의 민족 의식을 일깨웠다"고 설명했다.

멀리서 바라본 오녀산 모습은 여느 산과 사뭇 달랐다. 산 정상에 자리한 오녀산성은 마치 항공모함이 올라 앉은 듯한 모양새다. 절벽을 이용해 산성을 쌓아 난공불락의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다. 산성에 오르기 위해서는 1천여 개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했다. '고구려의 혼과 항일의 역사를 찾아서'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일행과 사진을 찍으려는데 몰래 따라붙던 공안 2명이 제지했다.

가이드 김 씨는 "한국인들이 고구려 유적 답사를 오면 항상 감시자가 따라붙는다"며 "내용과 상관 없이 현수막을 들고 사진 찍는 것을 금지할 뿐 아니라 함께 절을 하는 등 간단한 추도 의식도 할 수 없게 막는다"고 했다.

25일 백두산에 이어 26일에는 '고구려 역사 박물관'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는 집안을 찾았다. 국내성 터에 이어 광개토대왕비, 광개토대왕릉으로 추정되는 고분 등이 자리한 우산하 고분군, 장군총 등을 둘러봤다.

특히 일행을 어이없게 만든 것은 중국 측이 우산하 고분군 입구에 고구려 28대왕 박람관과 함께 세운 안내문. '집안고구려 민속문화 연구발전센터' 명의로 중국어와 한글로 표기한 안내문은 이곳저곳 맞춤법이 잘못된 것은 차치하더라도 논리 전개가 가관이었다. 첫 줄부터 '고구려는 중국 북방의 소수 민족 정권'이라 적었고 고구려가 '국내 전쟁'으로 소멸했다고 밝혀놨다. 답사를 마치고 돌아서는 일행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동북공정의 논리 확장, 요하문명론

고구려의 역사는 동북공정의 주요 목표다. 하지만 '동북공정=고구려공정'이라고 할 수는 없다. 동북공정은 동북3성 일대에서 발원한 모든 민족과 그들의 역사를 중국사로 편입하겠다는 것이다. 고구려 아니라 고조선, 발해의 역사까지 모두 중국사로 보겠다는 의도가 깔린 사업이다.

중국의 역사 관련 공정은 오랜 동안 준비해온 국가 전략.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과 중화문명탐원공정(中華文明探源工程)을 거쳐 동북공정을 진행해왔다. 하상주단대공정은 고대 왕조인 하(夏)'상(商)'주(周)의 존속 연대를 공식 확정, 중국의 '역사 시대'를 1천 년 이상 끌어올렸다. 중화문명탐원공정은 신화 시대인 '3황 5제'의 시대를 역사로 편입해 중국 역사의 시발점을 기존보다 1만 년이나 끌어 올리면서 세계 최고(最古)의 문명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대희 교사는 "이 같은 행보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질서를 구축하겠다는 야욕의 산물이자 56개 소수 민족이 갈등 없이 중화민족이라는 우산 아래 뭉치게 하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며 "결론을 미리 내려 두고 증거 자료를 짜맞추는 과정에서 자신들에게 불리한 내용들은 무시한다는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역사 왜곡 상황을 보여주는 결정판은 요하문명론(遼河文明論). 중국은 전통적인 화이관(華夷觀)에 따라 중원의 화하족 외에 동서남북에 오랑캐가 있다는 식으로 민족을 구분지었는데 중원의 황하문명보다 앞선 요하문명이 발견되자 이 시각을 수정하기에 이르렀다. 요하문명을 억지로 중국사에 편입하기 위해 야만인이라 여기던 이들까지 모두 중화민족의 범주에 넣어야 했던 것.

이 교사는 "이 같은 인식에 따르면 북방의 모든 소수 민족은 화하족의 시조인 황제의 후예"라며 "더구나 이 지역에서 발원한 단군, 웅녀, 해모수, 주몽 등 우리의 선조들도 모두 황제의 후예가 되는 꼴"이라고 했다.

27일 오전 들른 곳은 요녕성의 성도(省都)인 심양의 요녕성 박물관. 마침 요하문명전이 열리고 있어 요하문명론의 실체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5개로 나뉜 문명전 전시실 가운데 일행을 특히 당혹스럽게 만든 것은 제3전시실. 화하일통(華夏一統)이라는 이곳의 주제부터 편협한 시각을 드러내고 있었다. 화하일통은 화하족(중화민족)이 고구려를 포함한 이 지역의 모든 민족을 하나로 융합했다는 의미다.

전시실 내부에 전시된 고구려와 부여에 대한 설명은 한 술 더 뜬다. 부여는 중국 북동쪽의 소수 민족 정권이라 폄하하는가 하면 부여와 고구려를 설명한 문장 마지막은 '화하문명에 활기를 불어 넣고 수, 당 왕조의 황금 시대를 여는 바탕이 됐다'(~brought new blood to the Chinese nation and led to the golden age of the Sui and Tang Dynasties)고 밝혔다.

이 교사는 "고구려뿐 아니라 고조선, 발해 역사까지 왜곡하고 있는 중국의 의도대로라면 우리 역사는 시간적으로는 2천 년, 공간적으로는 한강 이남으로 축소될 것"이라며 "중국의 동북 지역에 대한 역사, 지리, 민족 문제에 대한 자료 수집'연구'홍보, 관련 전문가 양성 등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동북3성에서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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