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 광장] 계산, 똑바로 합시다

제자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에서 "더치페이하기 좋은 날씨다"라는 밑도 끝도 없는 문장을 발견했다. 요즘 용돈이 궁한 건지, 여자 친구가 너무 얻어먹기만 하는 건지, 고(故) 성재기 씨(남성연대 대표)를 제 나름대로 애도하는 건지, 슬쩍 궁금했다.

알다시피 '더치페이'는 술값이나 밥값을 각자 부담하는 계산 방식이다. 대개는 합리적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야박하게도 느껴지는 계산법인데, '더치페이하기 좋은 날씨'라는 건 성재기 대표가 투신하기 전에 트윗으로 남겨 유명해진 말이다.

술값, 밥값을 넘어 인생 계산은 어떨까. 이번 달을 마지막으로 정년퇴임하는 선배 교수가 연구실 짐을 정리하다 말고 65년의 인생을 차근차근 '계산'해 보았더란다. 먼저 부모님. 해드린 것보다 받은 것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용돈도 챙겨 드리고 병시중도 하긴 했지만, 부모님 은혜에 비하면 당연히 새 발의 피도 안 됐다.

30여 년 길러낸 제자들. "요즘 학생들, 공부에는 기초가 없고 삶에는 열정이 없으며, 예의는 부족하고 쾌락주의는 과도하다. 어쩌겠나. 내가 참아야지"라고 생각하며 강단에 서 왔다. 그러나 다시금 냉정히 계산해 보건대, 더 많이 참은 쪽은 학생들이었다. 오랜 유학 생활에서 돌아와 토씨 빼고는 전부 외국어로 강의하던 선생을, 학생들 눈높이에 맞추려는 시도는 하지 않고 자기 기준으로 학생들을 윽박지르고는 학생들 탓만 하던 선생을, 학생들은 무던히도 참아주었다.

짐 정리를 끝내고 집에 가서 배우자를 바라보니, 또 머릿속 계산기가 작동했다. 40여 년 함께 살아온 배우자는 결혼할 당시 무척 가난했다. 상당히 유복한 집 딸이었던 선배는 남편이 자기 봉급으로 시집 식구들 뒷배 봐주는 것을 눈감아줬다. 어떤 물건도 버리지 못하고 남의 집에서 버린 물건까지 끊임없이 주워오는 성벽도 탓하지 않았다. 그렇게 일평생 손해 보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남편은, 시시때때로 임신한 고양이처럼 예민해지던 예술가 아내를 한 번도 질려 하지 않고 인정해 줬다.

남편이 시집 식구들을 찔끔찔끔 도와준 데 비해, 선배는 사업하다 망한 친정 동생을 통 크게 도와줬다. 복잡하게 계산할 필요도 없이, 선배 쪽에서 친정에다 더 많은 돈을 퍼부었다. '실상이 이러함에도 왜 늘 내가 손해를 본다고 생각했을까'라는 소중한 깨달음을 얻음과 동시에 삶에 더 많이 감사하게 되었다는 선배의 얘기를 들으며 나도 덩달아 각성이 됐다.

미하엘 엔데의 동화 '모모'에 나오는 '똑 떨어지는 엉터리 계산' 에피소드는 또 어떠한가. 손님들과 농담을 주고받고 늙은 어머니를 찾아뵙고, 여자 친구에게 꽃을 바치며 행복하게 살아가던 이발사 푸지 씨가 회색 신사들의 방문을 받는다. 회색 신사들은 푸지 씨가 얼마나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있는지 똑 떨어지는 계산법으로 보여준다. 푸지 씨는 회색 신사들의 충고를 받아들여 손님들과 잡담하고 어머니를 보러 가고, 여자 친구에게 꽃을 바치는 등 돈 안 되는 잉여의 시간을 싹 없애버리고 오로지 효율과 돈을 따지며 정신없이 바쁘게 일한다. 그랬더니 삶의 즐거움도 행복도 고스란히 사라진다. 수단과 목적을 교묘히 뒤바꿔 선량한 사람을 현혹시킨 회색 신사들의 똑 떨어지는 계산법은 사실상 엉터리 그 자체였던 것이다.

'더치페이하기 좋은 날씨'가 과연 어떤 것인지, 내 머리로는 이해하지 못하겠다. 다만 '1억 원을 후원해 달라'며 장맛비로 불어난 한강물에다 누군가의 자식이자 아빠이고 남편이며 친구인 귀하디 귀한 생명을 훌쩍 투기한 행위만큼은, 똑 떨어지지도 않는 엉터리 계산이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 금 덩어리를 남산보다 높이 쌓은들, 죽은 맥박 한 번을 다시 뛰게 하지 못한다.

계산적인 성격, 계산적인 사람, 나쁘지 않다. 계산을 똑바로만 한다면. 오히려 상대를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나만 억울하다는 피해 의식, 수단과 목적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엉터리 계산법이 나쁘다.

박정애/강원대교수·스토리텔링학과 pja83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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