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와 같은 '힐링' 이야기들이 담긴 모음집은 학급문고의 단골손님이었다. 그 책들은 짧은 이야기들이라 쉬는 시간마다 끊어서 읽기에도 안성맞춤이었고 그 안엔 행복하고 따뜻하거나, 슬퍼도 감동적인 이야기들만 담겨 있었기에 즐겨 읽곤 했다. 그 책들을 통해 접했던 수많은 이야기 중 대부분은 기억 속에 묻혀 버렸지만 지금도 종종 떠올리며 언급하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고양이를 지극히 싫어하던 한 무뚝뚝한 아버지가 함께 살게 된 고양이로 인해 고양이에게 점점 마음을 열게 되고, 덩달아 그의 무뚝뚝함도 조금씩 녹아내렸다는 내용의 이야기다.
현실적으로 이렇게 다른 누군가의 굳게 닫혀 있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다. 그렇기에 그러한 변화가 이루어졌을 땐 더욱 감격스럽다. 그리고 그 변화를 일으킨 장본인이 사람이 아니라면, 받게 되는 느낌은 또 미묘하게 달라진다. 그 고양이의 이야기는 내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따듯하고 뭉클거리는 무언가가 천천히, 그리고 잔잔하게 퍼짐을 느끼게 해줬다. 책 속엔 이보다도 더 감동적이고 행복한 내용의 이야기들도 많았지만 유독 그 이야기가 지금도 내 뇌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바로 내가 그런 고양이와 함께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체셔와 앨리샤는 늘 우리 가족의 공통된 관심사이다. 이들의 움직임 하나하나는 주목받으며, 사소한 몸짓 하나도 우리 가족들 사이에서는 이야깃거리로 두고두고 회자되곤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고양이가 우리 집에서 우리 가족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주된 관심사는 아니었다. 예전엔 오히려 감히 우리 집에 반려동물이, 그것도 온 집안에 털을 풀풀 날리며 뛰어다니는 이 녀석들이 함께할 것이라고 우리 가족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처음 체셔를 데리고 집에 내려갔을 때에는 내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반응이 좋지 않았다. 방학을 맞아 두 달간 함께 집에 내려가 있을 생각이었지만, 생각보다 차가운 엄마의 반응에 과연 두 달을 버틸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였다. 엄마는 거실에 앉아있는 털 뭉치 체셔를 보고 질겁하며 당장 내 방으로 함께 들어가라고 했고, 내 방과 베란다에만 체셔가 머물도록 허락했다. 하지만 곧 체셔는 온 집안을 종횡무진 쏘다니며 탐험을 시작했고, 엄마는 그런 체셔의 모습을 직접 카메라에 담을 정도로 호감을 보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체셔가 침대 위에서 함께 자는 것도 묵인했고 어느 순간부턴 자는 체셔에게 이불을 덮어줄 정도로 체셔를 챙겨주기 시작했다.
고양이와 함께하며 느낀 것이지만 고양이는 상대방의 마음에 드는 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체셔가 쉽게 우리 가족에게 받아들여졌던 건, 조용하고 묵직한 체셔의 성격이 우리 가족과 맞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의 성향에 맞추기 위해 체셔가 그렇게 행동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우리 가족에게 딱 맞아떨어진 체셔의 은근한 매력에 체셔의 입양에 부정적이던 가족들의 생각도 변했고, 서로 떨어져 객지생활을 하던 터라 서로 소통이 부족하던 우리 가족들에게 체셔라는 공통 관심사가 생겨서 서로의 이야깃거리도 많아졌다. 그리고 간혹 서로 다투고 집안 분위기가 냉랭할 때에도 체셔의 애교에 서로 마음이 풀리고 말문이 트이곤 한다.
지금도 조용히 옆에 와서 마주한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뜨며 고양이 키스를 보내는 체셔의 매력에 항상 따뜻하고 뭉클거리는 기쁨과 행복감을 느낀다. 그렇기에 힐링을 위해 감동적인 이야기를 읽는 것도 좋지만, 적어도 반려동물을 통한 힐링에 관한 것이라면 이젠 더 이상 책 속에서 찾을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고양이가 바로 나를 감동시키고, 마음을 치유해주는 힐링 고양이이기 때문이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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