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안상학의 시와 함께] 나무의 앞-고은(1933~)

보아라 사람의 뒷모습

신이 있다면

이 세상에서

저것이 신의 모습인가

나무 한 그루에도

저렇게 앞과 뒤 있다

반드시 햇빛 때문이 아니라

반드시 남쪽과 북쪽 때문이 아니라

그 앞모습으로 나무를 만나고

그 뒷모습으로 헤어져

나무 한 그루 그리워하노라면

말 한마디 못하는 나무일지라도

사랑한다는 말 들으면

바람에 잎새 더 흔들어대고

내년의 잎새

더욱 눈부시게 푸르러라

그리하여 이 세상의 여름 다하여

아무도 당해낼 수 없는 단풍

사람과 사람 사이

어떤 절교로도

아무도 끊어버릴 수 없는 단풍

거기 있어라

-시선집 『마치 잔칫날처럼』(창비, 2012)

사실 사물에 앞과 뒤가 있겠는가. 그것은 인간이 고안해낸 세상을 읽는 방식을 적용하기 때문에 앞과 뒤가 있을 뿐이다. 그렇게 보면 세상 모든 사물의 앞과 뒤를 구별할 수 있다. 심지어는 강가의 조약돌까지도 음과 양, 앞과 뒤를 쉽게 알 수 있다.

세상은 앞과 뒤를 구별만 해서는 존재할 수 없는 법이다. 누군가 쓸쓸한 뒤를 보일 때 등을 다독여 주고, 누군가 등이 시릴 때면 품어주는 누군가의 앞이 있어야 세상은 살 만하다.

"사랑한다는 말"이 귀한 세상이다. 그렇다고 아주 없지는 않다. 이 말 한마디가 온천지를 '단풍' 물들이고, '내년의 잎새' 더 푸르게 한다고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물들인다고 한다. 앞이 뒤를 품을 때 쓰는 말이라 한다. 가히 신의 한 수다.

시인 artand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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