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명수의 집중 인터뷰] 김종대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건강보험 도입 36년…보험료 부과 소득중심 전면 개편해야"

월급봉투에 찍혀 나오는 '건강보험료'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자주 병원에 가지 않는데도 매달 꼬박꼬박 날아오는 보험료 고지서에 불만을 가진 적이 한두 번은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보험료와 해마다 인상되는 보험료에 화가 나기도 한다.

김종대(65)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을 중심으로 한 '건강복지플랜' 보고서를 내놓고 건강보험 개혁에 나서고 있다.

김 이사장은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은 재정준비금을 다 까먹고 적자상태에서 은행으로부터 자금을 빌려서 운영하는 등 재정파탄을 한 차례 겪은 적이 있다며, 단기흑자를 내고 있는데다 생산가능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지금이 '지속가능한' 건강보험제도 개혁을 위한 마지막 적기라고 강조했다.

"갑자기 건강보험체계가 무너져 온 국민이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우리 사회는 아마도 엄청난 혼란을 겪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런 사태가 머지않은 장래에 닥칠 수도 있습니다. 2016년부터는 우리나라의 생산가능인구(15세 이상 ~65세 미만)가 감소하기 시작합니다. 2013년 현재 생산가능인구는 3천671만 명이지만 2016년 3천704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내리막으로 돌아서서 2060년에는 2천100만 명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런 인구구조를 봐서라도 지금 개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저출산고령화구조가 악화되면서 현재 34.4%인 노인 진료비가 2020년에는 46% 수준이 될 것입니다. 만성질환 의료비는 급증하고 보험료는 올릴 수가 없습니다. 어디서부터 이 문제의 매듭을 풀어야 할까요?"

건보공단 스스로 건강보험 개혁에 나서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공단이 제시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보험료 부과체계 개편 등 건보제도 개혁안을 마련해서 연말까지 내놓기로 했다.

여전히 건강보험은 우리 국민들에게 골치 아픈 '민원'으로 각인돼 있는 것이 현실이다. 보험료 부과와 관련 건보공단에 제기된 민원은 6천400만 건(2011년 기준)이나 된다. 온 국민이 최소한 1건 이상의 불만을 제기한 셈이다.

건강보험이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도입된 것은 1977년이다. 12년 후인 1989년 전국민 의료보험으로 확대됐다.

김 이사장은 복지부의 전신인 보건사회부에서 보험과장(1977년)과 의료보험국장(1986년), 국민연금국장(1987년) 등을 거치면서 의료보험 시범사업에서부터 관여해 온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 도입과 정착의 산파 역할을 했다. 복지부를 떠난 뒤에도 그는 보험제도와 연금 개혁을 줄기차게 주장했고 2011년 건보공단 이사장으로 취임, 건강보험 개혁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

-박근혜정부는 대선 때부터 '행복한 대한민국'을 내세우면서 '복지코드'를 전면에 내세웠다.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 건보공단의 현안은 건강보험 제도 개선이다. 새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 중에서도 건강보험과 연금제도 개선이 중요하다.

복지의 핵심은 건강과 소득이다. 즉 건강과 소득의 보장이 복지제도의 핵심인데 온 국민이 우선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문제가 의료건강 보장이다. 건강보험은 출발 때는 의료보험이었는데 개념을 건강으로 넓혀서 건강보험제도로 확장된 것이다.

복지의 최우선적인 과제는 국민연금보다 건강보험이라고 생각한다. 연금문제는 기초연금을 새롭게 마련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건강보험은 쉽게 보면 건강의 재분배이자 소득의 재분배다. 건강한 사람은 보험료만 내고 병원에 가지 않는다. 이는 건강한 사람이 건강하지 않은 사람에게 건강을 지원하는 재분배이다. 소득이 많은 사람은 더 많은 보험료를 낸다. 소득의 재분배인 셈이다."

-왜 현재시점에서 건강보험제도를 개혁해야 하는가,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의 좌표 설정부터 하는 것이 좋겠다.

"우리가 전 국민 의료보험을 도입한 지 36년이 됐다. 전 국민 의료보험을 가장 빨리 정착시킨 나라가 우리나라다. 우리의 건강보험은 다른 나라보다 부담률이 적다. 일본이 9.48%, 독일이 15.5%, 프랑스가 13.85%를 부담하는 데 반해 우리는 5.89%밖에 되지 않는다.

또한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의료서비스의 질이 떨어지지 않는다.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언제 어디서나 편리하게 받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문제는 보장성이 62%로 다소 떨어진다는 점이다. 80%는 보장해야 하는데 아직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보험료 부과의 형평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보험료 부과 기준을 소득 중심으로 하지 않고 재산과 자동차 유무, 나이와 성별 등에 따라 도입 초기에 하던 방식을 개선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보험료를 올리지도 못하고 있다.

의료공급체계도 비효율적이다. '빈익빈 부익부'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서울대병원과 현대아산중앙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빅5' 병원에 환자가 몰리고 있는 반면 지방의 중소병원 등 지방병원은 빈사상태다.

빅5 병원의 진료비 수익이 2001년에 비해 2011년에 3.3배가 늘어난 반면 그후로는 점점 수익이 떨어진다. 일반병원은 그 사이 2배가 늘어났고 일반의원급은 1.3배 증가에 그쳤다.

지방환자들이 대거 서울의 빅5 병원으로 몰리는 것도 공급체계 왜곡의 한 원인이다."

-보험재정이 근본적으로 취약하다는 말인가. 아니면 징수에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

"보험재정 누수가 상례화되어 있다. 이는 재정누수방지에 대한 제도가 미흡하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진료기관에서 환자 확인절차를 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에서는 다 하는 절차다.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진료받는 경우가 적지않다. 실상이 파악되지도 않고 있다. 건보의 재정위기를 가속화시키는 요인은 또 있다.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다. 보험료를 낼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반면 피부양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노령화지수는 건보를 도입한 1978년 10%에 불과했지만 2006년 50%였고 2011년 73%에 이르렀다.

여기에 질병패턴이 만성질환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고혈압과 당뇨 대사증후군, 비만 등 돈이 많이 드는 만성질환이 늘어나고 있다. 만성질환은 한 번 아프기 시작하면 약을 평생 먹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

65세 이상 노인 의료비는 65세 미만에 비해 4.5배나 많다. 이것을 예방하지 않으면 건강보험제도를 지속시킬 수 없다."

-건강보험의 부과체계를 소득기준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논리의 근거는 무엇인가.

"도입 초기인 25년 전에는 소득파악률이 10%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79.7%의 소득을 파악하고 있다. 국세청 등 관계기관으로부터 소득과 관련된 자료를 거의 다 받을 경우, 95% 정도의 소득자료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자영업자에 대한 보험료는 종합소득세 신고액 500만원을 기준으로 다르다. 500만원 이상일 경우, 신고소득액과 재산 및 자동차 유무, 나이, 성별 등을 기준으로 보험료를 부과하고 있다. 500만원 이하의 경우, 신고소득액을 신뢰하지 않고 재산과 자동차 등을 근거로 부과한다.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는 민원이 잇따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동안에는 왜 부과체계 개선을 하지 않았는가.

"지난해 8월 건보공단이 처음으로 내부토론 끝에 소득을 기준으로 보험료를 부과해야 한다며 부과체계 개선방안을 내놓았다. 이 방안의 큰 줄기는 세 가지다. 첫째 모든 소득이 파악되고 있기 때문에 소득기준으로 부과하겠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소득보다 더 정확한 것이 소비라고 보고 소비를 기준으로 보험료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셋째는 소득과 소비 자료가 없는 사람에게는 기본 보험료라도 물리는 방안이다.

이 세 가지 방안에 여러 상황을 가정한 55개 방안을 시뮬레이션한 개선방안을 마련, 국회와 정부에 제출했다."

-건강보험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급여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질병 구조가 만성질환으로 전환되면서 노인의료비가 증가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건강보험을 위해서는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증진하는 쪽으로 건강보험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질병구조를 바꿀 수는 없지만 이처럼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면 건보재정은 건전하게 유지할 수 있다.

의료비 측면에서도 만성질환은 예방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현재 고혈압 환자가 30세 이상 인구 중에서 28.9%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셋 중에 한 사람은 자신이 고혈압 환자인지도 모르고 있다. 예방하면 돈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건보공단은 온 국민에게 건강검진을 받도록 하고 있다. 그 검진자료를 통해 질병가능성을 파악해서 맞춤형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5천만 명 중에서 누가 어느 질병에 취약한지 자료를 다 갖고 있다."

-부과체계를 소득기준으로 하면 대부분 보험료가 인상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소득 중심으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개편하면 보험료가 인상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지난해 진행한 모의실험 결과 전체 가구의 92.7%가 현재보다 보험료 부담이 줄어들고 단지 7.3%만이 인상되는 것으로 나왔다.

구체적으로는 지역가입자의 97.9%는 보험료가 지금보다 내려가고 직장가입자 중 근로소득만 있는 89.7%도 인하 혜택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동안 소득이 있었지만 피부양자 자격을 얻었던 241만 명의 부담이 늘어날 것이다. 직장 가입자 중에서도 근로소득 이외 다른 소득이 많은 사람도 더 많은 보험료를 내게 된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하면 전체 세대의 약 80~90%는 보험료가 내려가고 10~20%는 올라갈 것이다."

서명수 서울정경부장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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