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00세 시대 은퇴의 재발견] <2부>행복한 은퇴자들 <19)멋쟁이 농사꾼 박영재 씨

농부라고 얼굴 다 까맣나… 바람난 농부의 성공일기

퇴직하고 바로 복숭아 농사를 시작한 박영재 씨. 성공한 농사꾼으로 알려진 그는 수만 그루의 나무 모양을 다 그릴 수 있을 만큼 나무를 오랜 시간 지켜보고 관심을 기울였다고 했다.
퇴직하고 바로 복숭아 농사를 시작한 박영재 씨. 성공한 농사꾼으로 알려진 그는 수만 그루의 나무 모양을 다 그릴 수 있을 만큼 나무를 오랜 시간 지켜보고 관심을 기울였다고 했다.
박 씨 부부는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한 번은 쉰다. 휴식은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이란다.
박 씨 부부는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한 번은 쉰다. 휴식은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이란다.

농부의 얼굴이 아니었다. 하얗고 말끔해 책상에 앉아있다 방금 나온 사람 같았다. 그는 아무리 더워도 얼굴 가리개를 쓰고 일할 정도로 피부 관리에 열심이라고 했다.

그는 주 6일제 농부다. 농사일이 밀려도 일주일에 한 번은 쉬면서 아내와 함께 맛있는 것 사먹고 신나게 논다고 했다. 그래야 죽으라고 일할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2009년 퇴직한 박영재(66'의성군 금성면 하리길 181) 씨. 그는 경북에서 공무원 생활을 35년 하고 은퇴한 그해에 고향 의성에서 복숭아밭을 시작했다. 3만3천㎡(1만 평) 규모였다. 지난해 첫 수확을 하면서 그는 억대 농부가 됐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30% 정도 더 많은 수확을 기대한다고 했다.

'명품 복숭아'를 만들어 중국을 공략할 계획도 갖고 있는 멋쟁이 농부의 복숭아처럼 달달하고 붉은 이야기를 들어봤다.

-성공한 농사꾼이라고 소문이 났다.

"지난해 첫 수확을 했다. 작황이 좋아 첫 소득치고는 괜찮았다. 하지만 지난 3년 동안 돈 한 푼 벌지 못하고 일하느라 친구조차 만나지 못하는 세월을 보냈다. 농사일은 정말 힘들었고 사람을 쓰는 일도 쉽지 않았다. 운이 좋았다. 일본에서 좋은 품종을 얻을 수 있었고 친환경 매장에 납품이 돼서 이 정도의 성공을 거둔 것이다."

-퇴직 후 농사짓겠다는 생각을 언제부터 하게 됐나?

"처음에는 농사지을 생각이 없었다. 지금 복숭아밭 자리에 태양광발전소를 세울 계획으로 군 민원실에 설계도까지 접수시켰다. 그런데 아내가 말렸다. 큰 욕심 내지 말고 조상 대대로 농사지으며 살아온 이 땅에 과수원 하면서 자연과 더불어 살자고 설득했다. 그래서 묵혀둔 뒷산을 개간해 복숭아밭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내 말을 들은 것이 백번 잘한 선택이었다. 자연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자연에서 무엇을 배우나?

"욕심을 내면 반드시 그 이상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연이다. 나무 하나도 자신을 해코지하면 반격한다. 복숭아를 키우며 순응하는 법을 배웠고 사랑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복숭아나무 하나하나의 습성이나 모양 그리고 나무가 원하는 것을 알지 못하면 제대로 된 농사를 지을 수 없다."

-나무 모양이나 습성을 다 기억하고 있다는 이야기인가?

"눈 감고도 수만 그루 나무를 다 그릴 수 있다. 농사를 잘 지으려면 나무마다 일일이 모양을 파악하고 그 성격을 기억할 수 있을 정도가 돼야 한다. 자식 기르는 것과 똑같다. 애정을 가지고 봐야 한다."

-농사꾼이라는 자부심이 강하다.

"일본에 갔을 때 부인이 동경에서 큰 병원을 하고 있는 87세의 복숭아 농사꾼 할아버지를 만났다. 그는 부인과 자신 중 누가 더 존경을 받을 것 같은가를 물었다. 일본 사람들은 그의 부인보다 농사짓는 자신을 더 존경한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아 3대째 농사를 짓고 있는 정신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나도 그처럼 확신에 찬 당당한 농사꾼이 되고 싶다."

-아들도 농사를 지었으면 하나?

"우리 아버지는 아들이 공무원인 것을 싫어하셨다. 농사짓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신 분이다. 아버지의 꿈을 퇴직 후 이룬 셈이다. 복숭아밭에 아버지 산소가 있다. 지금쯤 좋아하시리라 생각한다. 아들에게 농사를 강요할 생각은 없다. 다만 좋아서 하고 싶어 하면 도와줄 생각이다. 농사도 장인정신으로 지었으면 한다."

-중국에 복숭아를 수출하고 싶은 것도 장인정신과 통하는 듯하다.

"모두들 중국 농산물 때문에 국내 농산물이 다 죽는다고 말한다. 그 반대로 우리 농산물을 중국에 수출할 계획이다. 멋지게 한번 보여주고 싶다. 지난해 중국 현지를 답사하면서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명품 과일을 만들면 시장은 얼마든지 있다. 중국으로의 수출이 곧 되리라 생각한다. 답은 명품 과일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친환경 농사를 시작한 것인가?

"유럽 연수를 가보면서 느낀 것은 결국 유기농 농사였다. 친환경 농사를 지어야 미래가 있고 성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농사의 핵심은 토양과 비료다. 비료는 직접 만들고 토양도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 흙 관리를 별도로 한다. 어제 딴 복숭아는 당도가 19브릭스였다."(보통 15브릭스만 돼도 당도가 높은 것이다)

-19브릭스, 대단하다. 복숭아 농사의 비법이 있는가.

"즉심이다. 가지치기를 하되 10㎝만 남기고 자르는 것이다. 이것을 잘하면 당도도 높고 과실도 충실해진다. 전국에서 이 기술을 배우러 오고 있다. 농사의 성공은 현대화와 기술 그리고 좋은 품종 확보에 달렸다. 물론 노력은 기본이다."

-지금 행복하겠다.

"아니다. 아직 행복하지 않다. 유통구조 때문이다. 농사꾼들은 밤낮없이 일해도 정작 배부른 사람은 중간 상인들이다. 그런 구조를 없애야 한다. 잘못된 시스템을 바로잡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 유통구조를 바꾸지 않고는 행복한 농사꾼이 될 수 없다."

-일주일에 한 번은 쉰다고 들었다.

"아무리 농사가 바빠도 1주일에 한 번은 아내와 함께 온천을 다니며 쉰다. 삶의 질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루를 쉬고 나면 힘든 농사일을 이겨낼 힘이 생긴다. 일주일에 하루는 놀고 먹는다. 바람 난 농사꾼 부부인 셈이다. 하하."

-농사를 짓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대답은 '하지 마라'다. 90% 이상이 1, 2년을 버티지 못하고 떠난다.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꼭 하고 싶다면 3천300㎡(1천 평) 규모로 부인과 함께 하라고 말한다. 그러면 연간 2천만원 정도의 소득이 생긴다. 그보다 큰 규모로 하면 실패할 확률이 크다."

-외모는 농사짓는 사람 같지 않다.

"왜 농사꾼은 시커멓고 옷도 마구 입어야 하나? 그런 농사꾼이 되고 싶지 않다. 아무리 더워도 일할 때는 얼굴 가리개를 한다. 자기 전에 피부 관리에 신경 쓴다. 5분만 노력하면 되는 일이다."

-부인과 환상의 복식조 같다.

"그렇다. 농장 이름이 '재희농장'이다. 내 이름 끝자와 아내(김영희)이름 끝자를 따서 지은 것이다. 아내는 든든한 농사 동지다. 넉넉한 마음이 있어 늘 고맙다."

김순재 객원기자 sjkimforce@naver.com

사진: 김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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