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건강편지] 사망 예정일

"이 정도면 대충 얼마나 남았나요?" 오늘도 어김없이 물어왔다. 아직 환자를 보지도 못했는데, 앞서 병원에서 치료한 오래된 의사 소견서만 한 장 달랑 들고 와서 사망 예정일을 알려달라고 한다. "글쎄요…." "이런 거 많이 해보셨으니까 대충이라도 알지 않나요?"

사망 예정일은 산부인과 의사가 출산 예정일을 말하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 아직은 살아있는 사람에게 사망할 날짜를 불쑥 말해버린다는 것이 왠지 석연찮다.

버섯처럼 울룩불룩 불거진 암 덩어리를 갖고, 배꼽이 볼록 나올 정도로 부풀어 오른 배를 갖고 오래 버티지 못할 것임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그래도 자꾸 물어오면 화가 난다. "당신은 도대체 얼마 남았나요?"라고 되묻고도 싶다.

대신 나는 이런 질문을 기대한다. '이럴 때 환자들이 바라는 것은 무언가요? 우리가 해줄 것은 없나요? 이런 거 많이 해보셨으니까, 죽음을 앞둔 환자가 무엇을 가장 하고 싶어하던가요?'

"얼마 남으신지 알고 싶은 거죠? 그런데 여명이라는 것은 의사 소견하고 꼭 맞아떨어지는 것이 별로 없더라고요. 이 병동에 입원하시면 평균해서 27일을 계셨어요. 그것도 마지막에는 하루 종일 거의 잠만 주무시니까, 맑은 정신으로 이야기하시고 지금처럼 죽이라도 드시는 날은 정말 며칠 안 남으신 거죠." "아직 그 정도는 아니신 것 같은데."

어디까지나 평균이 그렇다는 말이다. 잠자코 고갤 숙이고 있던 아들과 며느리가 드디어 내가 기다리던 질문을 했다. "실은 아버님 칠순이 다음 달인데, 아플 때는 생신을 안 한다고 해서 어떡할까 생각 중인데요?"

아픈 사람의 생신은 안 한다고 하지만 그건 죽음이라는 것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내일이 없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내년이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오늘이 남은 내 생애 최고로 건강한 날이다.

그래서 우리는 병원에서 환자의 칠순 잔치를 했다. 병풍을 치고 알록달록한 꽃사탕도 보기 좋게 높이 쌓았다. 봉사자들은 꽹과리를 치고 북도 두드렸다. 일가친척들이 도착하자, 아들과 며느리가 쑥스러워하면서 다소곳이 큰절을 올렸다.

입원 내내 기운이 없어 축 처져만 있던 환자가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너무 고맙다." 울면서 웃으면서 하루가 정말 정신없이 지났다.

좋은 삶이란 살아가는 과정이 좋아야 한다. 좋은 죽음도 죽어감이 좋아야 한다. 금방이라도 밀어닥칠 죽음의 공포 때문에 눈앞이 캄캄해져서 우왕좌왕하다 보면, 안타깝게도 인생의 마지막 기회마저 놓쳐버린다.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