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무명칼럼] 이우환 화백 그리고 대구와 부산

"다른 어느 나라나, 어느 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하면서도 신선한 미술 세계를 열어 보일 수 있지 않을까. 저의 정수를 보려면 ○○에 와야 볼 수 있도록, 그런 하나의 장소를 만들고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세계적인 현대미술가인 이우환(77) 화백의 말이다. ○○에 들어가는 도시는 대구가 아니다. 부산이다. 지난달 15일 부산시청에서 허남식 부산시장과 나란히 앉아서 서명한 '부산시립미술관 부설 이우환 갤러리 건립을 위한 협약' 석상에서 한 말이다.

부산 쪽 언론 보도는 더 구체적이다. "대구와 광주 등 지자체 사이에 벌어졌던 '이우환 유치 전쟁'은 막을 내리게 됐다"는 것이다. 이런 보도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이 화백은 "고향이나 다름없는 부산에 아담하지만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갤러리를 지으려고 결심했다. (중략) 최근에 몸이 좋지 않아 한동안 입원해 있으면서 생각을 정리한 끝에 부산에서 작업을 정리하기로 했다"고 했다.

이 화백은 경남 함안 출신이다. 부산서 중고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30대 때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한 대구가 이우환 화백의 예술적 고향이라며 대구시는 그의 이름을 단 미술관 유치를 경주해 왔다. 그러다 부산에 기선을 빼앗기자 '부산과 대구는 양이나 질에서 다르다'고 했다. 부산은 부산시립미술관 안 660㎡ 땅에 예산 49억 원을 들여 연면적 1천300㎡, 지상 2층, 높이 12m 규모로 건립되는 반면 대구는 대구문화예술회관 옆 땅에 건축비만도 297억 원을 들여 2만 6천600㎡ 부지에 건평 6천600㎡ 규모로 짓는다고 했다.

그러나 대구시의 설명에도 대구 사람들은 개운하지가 않다. 속된 말로 김이 팍 샜다. 이 화백의 부산 발언이 알려져 무척 허탈해진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우선 이우환이라는 이름을 빼앗긴 점이 걸린다. 대구에 짓는다는 미술관 이름은 '이우환과 그 친구들 미술관'이다. 대구시는 '이우환 미술관'을 원했지만 이 화백이 난색을 표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런데 부산에서는 '이우환 갤러리'라니.

준공 시점도 그렇다. 대구는 2016년 6월인데 부산은 1년이 빠른 2015년 상반기다. '이우환 갤러리'가 문을 열었다는 이야기를 1년 동안 들은 뒤 뒤늦게 개관하는 '이우환과 그 친구들 미술관'이 얼마나 주목을 끌지. 독점 내지 선점 효과는 날아갔다.

더 있다. 대구는 미술관 설계자가 세계적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다. 그러나 부산의 갤러리 설계자는 바로 이 화백 자신이다. 부산에서는 갤러리 그 자체도 이 화백의 작품이 될 것이라며 기대 폭발이다. 실제로 이 화백은 갤러리 건립 협약식에서 세밀하게 그린 갤러리의 설계 스케치까지 공개했다.

전시 작품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대구에 짓는다는 미술관에는 몇 작품이 전시될지 알려진 게 없다. 누가 몇 작품을 기증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없다. 그러나 부산에서는 이 화백이 벌써 14, 15점의 대표 작품을 기증하기로 했다고 한다. 부산만이 아니다. 광주시립미술관은 이 화백의 초기부터 최근까지 시대를 망라한 작품을 37점이나 소장하고 있다. 대구 사람들은 '이우환과 그 친구들 미술관'이 속 빈 강정이 되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대구시는 이런 의문이나 걱정에 대해 믿고 기다려 달라고만 할 게 아니다. 미술계 인사들은 물론 시민들의 궁금증과 걱정은 당연하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연말에 이 화백이 직접 설명할 것이라는 게 대구시의 발표이니까 그때까지 기다려 보기로 하자. 지금까지도 기다렸는데 4개월 더 못 기다리겠나?

다만 이 화백의 구체적 구상과 청사진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서둘러 미술관 공사를 시작하지는 말라는 이야기는 대구시에 하고 싶다. 부산에서는 그렇게 구체적이면서도 분명하게 공개 석상에서 이야기를 한 이 화백이 대구에서 어떤 말을 할지 너무 궁금해서다. 지금껏 기다렸는데 공사가 4개월 늦어진다고 무슨 대수겠는가? 하지 말자는 것도 아니고 들어보고 하자는 거다.

또 하나 덧붙인다면 12월에는 이우환 화백이 대구시청에서 김범일 대구시장과 나란히 앉아서 부산과는 다르다는 '이우환과 그 친구들 미술관' 건립에 대한 이야기를 시민들에게 자세하게 발표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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