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사만어] '서울분''지방놈'

얼마 전 일본 나고야 출장을 다녀올 때 일이다. 무거운 짐 가방을 들고 인천공항 출국장을 빠져나왔는데 공항 앞 도로에는 대구행 리무진 버스가 보이지 않았다. 얼마 전만 해도 출국장 앞 도로 오른쪽 끝에 버스정류장이 있었는데 어느새 없어져 버린 것이다. 이곳저곳 물어보니 대구행 버스정류장이 도로 건너편으로 옮겨졌다고 했다. 집에 가려면 리무진 버스를 다섯 시간 이상 타야 하는데 더운 날씨에 무거운 가방까지 끌고 횡단보도를 건너가려니 짜증이 났다. 서울 사람들은 출국장을 나오면 바로 앞에 리무진 버스가 줄지어 서 있는데 지방행 버스는 도로 건너편 구석에서나 탈 수 있으니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대구, 광주, 부산행 버스를 한곳에 몰아 놓으니 버스들이 똑바로 설 수 없어 그 일대는 온통 북새통이었다.

끓어오르는 열을 식히려 담배를 꺼내 무니 바로 앞에 '이곳에서 담배 피우면 과태료 10만원'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와 도로 담배를 집어넣을 수밖에 없었다. 지방 사람들은 버스를 기다리다 담배를 피우고 싶어도 도로 건너 서울행 버스정류장 옆 흡연장을 이용해야 하니 그것조차 기분이 나빴다. '서울분'과 '지방놈'을 이렇게 차별한 데서야 말이 되겠는가. 먼 곳에서 찾아온 손님을 더 극진히 대접하는 것이 우리네 예의가 아니었던가. 영남권 신공항이 왜 그렇게 필요한 것인지 새삼 절감하게 된다.

'서울분'들은 아직도 영남권 신공항에 대해 부정적 시각이 여전한 것 같다. 원래 '서울분'들은 지방 사람들의 고충을 이해해 주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지방 사람들은 그 빛나는 동북아 허브공항의 입출국자 통계에나 잡히는 '이용물'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 한국에서 제일 부수가 많다는 어떤 신문에서 '또다시 지방 공항을 만드는 정책 담당자는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라는 살벌한 공갈을 일삼던 기억이 난다.

거꾸로 생각해 '서울분'들이 한두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다섯 시간 이상 공항버스를 타야 한다면 '배보다 배꼽이 크다'며 온통 난리를 칠 게 분명하다. '서울분'들만 인삼 뿌리를 먹고 '지방놈'들은 무 뿌리를 먹어도 상관없는 게 오늘날의 현실이다. 서울과 지방을 차별하는 것은 제대로 된 대한민국의 모습이 아니다. 이런 차별이 계속 된다면 대한민국을 과연 민주국가로 부를 수 있겠는가. '서울분' '지방놈'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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