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나흘 만에 내년도 세제 개편안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은 현 정권이 총체적 기능 부전에 빠져 있음을 보여준다. 세제 개편안은 확정 발표 이전부터 현재 지적되고 있는 문제점이 부분적으로 드러났다. 그래서 정부의 계획대로 세법을 바꿀 경우 봉급생활자를 타깃으로 한 '선택적 증세'가 될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여러 차례 나왔다. 그런데도 정부는 그대로 밀어붙였고 새누리당과 청와대는 그냥 지켜보고만 있었다.
이는 당·정·청 간 의사소통에 심각한 장애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세제 개편안을 놓고 정부와 새누리당은 여러 차례 당정 협의를 했다. 이 과정에서 새누리당은 "중간 소득 계층에 대한 지나친 부담 증가는 시정돼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이를 관철하지 못했다. '당정 협의는 장식용' '새누리당은 정부의 거수기'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청와대의 기능 부전은 더 심각하다. 김기춘 비서실장 체제가 들어서면서 청와대는 정부에 대해 확실한 힘의 우위를 갖게 됐다는 것이 공통된 견해다. 그렇다면 정부에 세제 개편안에 퇴짜를 놓으려면 얼마든지 놓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청와대가 세제 개편안의 문제점을 지적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이는 청와대 참모 중 아무도 세제 개편안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청와대의 판단 능력에 심각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게 한다.
사후 대처에서도 당·정·청은 헛발질만 했다. 새누리당은 세제 개편안이 '중산층 죽이기'라는 비판이 터져 나오자 그제야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 현오석 부총리와 기획재정부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정부와 청와대의 대응은 더 한심했다. 정부는 "세목을 신설하지 않았고 세율을 올리지 않았으니 증세가 아니다"는 말로,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은 "거위에게서 깃털을 살짝 뽑으려 했다"는 말로 납세자의 부아를 질렀다. 세제 개편안에 '거위'들이 반발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여전히 눈치 채지 못하는 무능의 고백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당·정·청의 모습은 국민에게 이 정부를 믿어도 되는가라는 심각한 의문을 갖게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세제 개편안 파동으로 빚어진 국민의 실망을 과연 얼마나 신속히 걷어낼 수 있을까. 지금처럼 있으나 마나 한 당·정·청 협의 구조로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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