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피리와 춤

서너 해 전, 서울 인사동 거리에서 친구와 둘이 부채에 그림을 그려서 팔아본 적이 있다. 이른바 난전을 폈던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자리를 잡지 못해 악전고투했다. 전을 펴려고 하면 가게 주인들이 불호령을 치며 내쫓았다.

이리저리 쫓겨 다니던 중 마음씨 좋은 화방 사장님이 나타났다. 초면의 그 사장님은 "우리 가게 앞에서 해보라"고 허락해 주셨다. 아들이 미술대학에 다녀서 그런지 우리가 남 같지 않다는 말씀도 하셨다. 우리는 아저씨께 머리를 조아리고 장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손님이 뜸했지만 차차 매상이 올랐다. 고객이 원하는 그림을 척척 부채에 그려주는 두 아가씨가 신기했는지 구경꾼들도 모여들었다. 경산 하양 출신인 김성도의 '어린 음악대'는 '구경꾼은 모여드는데 어른들은 하나 없지요'하고 노래했지만 우리의 경우는 그 반대였다.

인사동이라는 특수성 때문이겠지만 대학생 화가 주위에 몰려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어른들이었다. 아이들은 없었다. 게다가 그 어른들의 절반은 서양인들이었다. 푸른 눈과 노란 머리카락을 한 그들은 쉽게 그림 값을 지불하며 즐거워했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의 참됨을 확실하게 깨닫는 순간이었다.

요즘은 대구의 중구도 인사동의 면모를 제법 닮아가고 있다. 문화도시를 표방하는 정책이 조금씩 실효를 거둔 셈이다. 보도블록을 교체한다고 문화가 바뀌겠느냐고 말하는 이도 있겠지만, 성경도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는다고 꾸짖었을 뿐, 피리 부는 자를 꾸짖지는 않았다.

누가 피리를 부는 사람인가. 예술을 아는 권력가, 예술 활성화를 돕는 행정가들이다. 이때에는 예술가들에게 춤을 추는 역할이 주어진다. 인사동을 닮아가는 대구 시내 거리에 문화의 향기가 흐르도록 하는 데에는 예술가들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도 일정 부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종종 동성로를 다녀보지만 거리에서 직접 활동하는 예술가는 눈에 띄지 않았다. 인사동과는 달랐다. 왜 그럴까. 이때는 예술가가 피리를 부는 사람이므로, 대구의 도심에 예술가가 없다는 것은 춤을 추는 이가 없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거리에서 부채에 그림을 그려 팔아도 그것을 구입하는 애호가가 없다면, 아무리 출중한 예술행정이 펼쳐진들 도시의 문화는 발전하지 못하리라.

'어린 음악대'는 자부심이 넘친다. "동네 안에 제일 가지요"하고 큰소리를 친다. 하지만 춤을 추는 애호가들이 부족한 도시 분위기 탓인지, 김성도의 모교인 경산 하양초등학교 건물 뒤편의 '어린 음악대' 노래비가 어쩐지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정 연 지(대구미술광장 입주화가) gogoyonj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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