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안상학의 시와 함께] 너의 눈

# 너의 눈 -김소연(1967~ )

네 시선이 닿은 곳은 지금 허공이다

길을 걷다 깊은 생각에 잠겨 집 앞을 지나쳐 가버리듯

나를 바라보다가, 나를 꿰뚫고, 나를 지나쳐서

내 너머를 너는 본다

한 뼘 거리에서 마주보고 있어도

너의 시선은 항상 지나치게 멀다

그래서 나는

내 앞의 너를 보고 있으면서도

내 뒤를 느끼느라 하염이 없다

뒷자리에 남기고 떠나온 세월이

달빛을 받은 배꽃처럼

하얗게 발광하고 있다

내가 들어 있는 너의 눈에

나는 걸어 들어간다

그 안에서 다시 태어나 보리라

꽃 피고 꽃 지는 시끄러운 소리들을

더 이상 듣지 않고 숨어 살아보리라

-시집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민음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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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연명이 「飮酒」라는 시에서 그랬던가. 마음이 멀어지면 사는 곳도 절로 외지게 된다(心遠地自偏)고. 자동차 소리가 요란한 곳에 살아도 그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을 정도라 하니 가히 한 도 튼 이야기다.

꽃들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을지도 모른다. 그런 소리까지 듣게 된다면 우리 귀는 엄청 시끄러울 것이다. 어디 가서 조용히 쉴 수 있으랴. 그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귀를 가져서 다행이다.

문제는, 꽃들이 피고 지는 소리를 마음으로 듣는다는 것이다. 무슨 노래처럼 울고 웃게 되는 것도 꽃의 말을 내 마음대로 들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것들로부터 상처를 받는다는 것은 더 아픈 일이다. 옛 시인이나 지금 시인이나 잘 안 되는 일들을 견디는 방법은 같은 모양이다. 어깃장을 놓아 보는 것이다. 얼굴 옆에 달린 귀는 몰라도 마음의 귀는 막기 어렵다는 말이다.

안상학 시인 artand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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