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망향의 세월, 소리쳐도 가슴 아린 "대한독립 만세"

일제 강제징용 사할린 동포·후손들의 '만세 열창'

68주년 광복절인 15일 오전 일제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사할린 한인동포들과 재러시아 2, 3세대들이 유즈노사할린스크 한인회관 앞 광장에서 태극기를 들고
68주년 광복절인 15일 오전 일제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사할린 한인동포들과 재러시아 2, 3세대들이 유즈노사할린스크 한인회관 앞 광장에서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고 있다. 러시아 유즈노사할린스크에서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광복 68주년을 맞은 8월 15일. 감동의 태극기 물결과 뜨거운 함성이 러시아 사할린 한복판에서 울려 퍼졌다. 사할린 주도(州都) 유즈노사할린스크 한인회관 앞 광장에서 70여 년간 고향땅을 밟아보지 못한 한인동포 1세들과 자녀들은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 만~세'를 목놓아 외쳤다. 대구는 연일 폭염이 기승을 부리지만 사할린은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 날씨 속에 광복절을 맞는 사람들의 열기로 뜨거웠다. 이날 만세 삼창을 힘차게 선도한 징용 1세대 김윤택(87'경산시 와촌면) 씨는 "광복절을 맞아 이렇게 사할린에서 만세를 외치니 얼마나 가슴 벅찬지 모르겠다"며 "징용 70여 년 세월에 초라하게 늙어버린 몸이지만 죽기 전에 고향산천을 한 번만이라도 더 밟아보고 싶은 게 내 마지막 소원이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1, 2년 만에 귀환의 꿈을 안고 떠난 징용길

사할린은 2차세계대전 때 일제에 의해 강제징용당한 한인동포들이 해방 후 귀환길이 막힌 채 망향(望鄕)의 한(恨)을 안고 살아가는 곳이다. 그러나 1, 2년만 고생하면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꿈은 아직도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한인동포들이 가장 많이 끌려온 브이코프 탄광촌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린 배용권(86'칠곡군 약목면) 씨는 "일본군들이 집으로 들이닥쳐 총부리를 겨누며 '한 집에서 한 명은 가야 한다. 아무도 안 가면 내일 이 집에 와서 가족을 다 쏴 죽이겠다'고 협박해 부모님과 형, 동생들을 살리기 위해 둘째인 내가 어쩔 수 없이 이곳에 왔다"고 했다. 당시 칠곡군 왜관역은 사할린으로 강제징집당한 조선인들의 집결지이자 출발지였다. 그래서 지리적으로 가까운 대구'경북지역 청년들이 많은 피해를 입었다.

◆강제노역장은 생지옥

매달 200여 명씩 끌려왔다.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가 다시 배를 이용해 바다를 건너 시모노세키, 나고야, 홋카이도를 거쳐 사할린에 보름이 걸려서야 도착했다.

쉴 틈도 없이 곧바로 강제노역장으로 보내졌다.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탄광과 벌목장, 비행장, 도로 등 토목공사장에서 하루 10~12시간 때로는 15시간씩 등골이 휘어지도록 일했다. 하루 목표량을 채우지 못하면 탄광에서 나오지 못하게 했다. 시니고르스크 탄광에서 채탄작업을 한 김윤택 씨는 "탄광에는 음료수가 부족해 식사 전에 한 컵만 제공될 뿐, 더 마시고 싶어도 주지 않았다"며 일제의 잔악한 횡포에 손을 내저었다.

5, 6년 후 그토록 기다리던 전쟁이 끝났다. 1945년 8월 15일, 애타게 그리던 광복을 맞아 고향에 갈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일본이 패망했다는 소식에 강제동원으로 처음 도착한 코르사코프 항구 선착장에 무려 4만여 명의 동포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소련군에게 저지당하고 기나긴 망향의 세월이 시작됐다. 뼈 빠지게 일하며 살아남은 한인 동포들은 일본에 버림받고, 소련으로부터 무시와 차별을 당하며, 조국으로부터는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하며 수십 년간 한을 삭이며 살아왔다.

◆사할린 동포 도우미로 나선 대구 청년들

사할린에 끌려간 한인동포들 가운데 70%는 대구'경북 출신 청년들이다. 16~20세의 젊은 청년들은 강제징용 70여 년의 세월에 어느덧 백발이 됐다.

민족통일대구시청년협의회는 2008년부터 매년 민간사절단 자격으로 사할린을 방문해 동토에 버려진 동포들을 친부모, 친형제처럼 돌봐주며 교류를 지속해 오고 있다.

이날 행사는 민족통일대구시청년협의회가 광복 68주년을 맞아 14~18일까지 4박 5일간 진행한 사할린 한인동포 위문 여정의 첫 일정이다. 대구시청년협의회 회원들은 '68주년 광복절 기념식 및 대구의 밤' 행사를 시작으로 사할린 동포들과 함께 이틀간 체육대회와 노래자랑, 사물놀이 공연 등 한마당 잔치를 벌이고 있다. 행사 마지막 날에는 동포들과 '아리랑'을 함께 부르며 70여 년간 잊고 살았던 고국에 대한 향수를 달래 줄 예정이다.

한편 대구시청년협의회원들은 지난해보다 더 많은 선물보따리를 풀었다. 장학금 2천달러와 태극기 3천 개를 비롯해 동포들이 많이 다니는 사할린 경제법률대학교에 발전기금 4천달러 등을 각각 전달했다. 이처럼 대구 청년들이 한결같은 정성으로 6년간 위로 방문을 계속하자 한인 동포들도 굳게 닫혔던 마음을 열고 매년 이들을 반기며 기다리고 있다.

하태균 민족통일대구시청년협의회장은 "사할린에 끌려와 추위와 굶주림, 강제노역 등으로 얼마나 비참한 생활을 했는지 지금 세대로서는 상상도 못할 것"이라고 위로한 뒤 "어르신들이 고향을 떠났을 때 대구'경북지역은 가난하고 초라한 동네였지만 지금은 600만 시'도민이 거주하며 대한민국 경제를 선도하는 거대 도시로 성장해 놀라운 발전을 이룩했다"며 동포들이 자긍심을 갖고 살아가길 기원했다.

러시아 유즈노사할린스크에서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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