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호동락] 영주시 풍기 죽령

옛날엔 생활 위해 걷던 길, 지금은 '힐링의 길'

여행은 떠나고 싶을 때 망설임 없이 떠나야 한다. 그래야 후회를 하지 않는다. 이번 여행도 두 번 정도 망설였던 곳이다. 그러나 이번만은 멀어도 눈 딱 감고 떠나기로 했다. 경상북도 영주군 풍기읍에는 '인삼의 고장'답게 인삼밭이 많이 보였다. 빨간 열매가 탐스럽게 달린 인삼이 곳곳에 심어져 있었다.

이번 목적지는 풍기읍 수철리 죽령(해발 696m)이다. 소백산 허리 구름도 쉬어간다는 아흔아홉 굽이 죽령은 문경새재, 추풍령과 함께 영남지방과 기호지방의 경계선을 이루는 소백산맥 3대 관문의 첫 번째이다. 이 고개는 신라 아달라왕 5년(서기 158년) 죽죽(竹竹)이 길을 개설하였다 하여 죽령(竹嶺)이라 불리어 왔다.

한때는 고구려와 국경이 되기도 하였고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청운의 꿈을 안은 선비들의 과거 길이었다. 또한 온갖 문물을 나르던 보부상과 나그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숱한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다. 죽령은 또한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과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의 경계선이고, 2천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영남 내륙을 이어온 옛길이기도 하다.

죽령으로 오르는 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르막이라 힘들었다. 올라가다 보니 국가명승 33호로 지정된 '죽령 옛길'의 이정표가 보였다.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많았다. 조금 내려가 보니 자전거로는 가기 힘든 곳이어서 그냥 아쉬움만 남긴 채 지나쳤다. 옛날에는 생활을 위해 걸어다녔던 길이 지금은 가장 걷고 싶어 하는 길이 되었다고 한다. 죽령 옛길은 정말 자연 그대로를 간직한 멋진 길이었다. 다음을 기약하며 발길을 돌렸다.

오르고 또 올라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중간중간 시원한 물을 마셔가며 쉬면서 달리고 또 달렸다. 갑자기 뒤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 뒤돌아보니 외국인 사이클 동호회 회원 15명이 멋있게 달려오고 있었다. 역시 청춘은 아름답고 멋있었다. 그 모습에 다시 힘을 내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정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지만 가슴은 벅찼다. 드디어 정상. 눈앞에는 영남관문이 보였다. 영주와 단양의 경계 이정표도 보였다. 정상에는 '영남제일관'이라는 누각이 있었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영주시는 아름다웠다.

말로만 듣던 죽령주막도 있었다. 물론 옛날의 주막은 아니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쉼터 겸 휴식처인 죽령주막에서 풍기인삼으로 만든 인삼주스를 마셨다. 향도 좋고 맛도 좋았다. 인삼 때문인지 지친 몸이 되살아났다.

점심을 먹은 후 누각에서 휴식을 취했다. 오토바이족이 엄청 많았다. 그러나 조용한 죽령을 뒤흔드는 오토바이 굉음은 귀에 거슬렸다. 자전거 여행은 이런 소음이 없어 좋다.

잠시 휴식을 끝내고 충북 단양 쪽을 향해 페달을 밟았다. 더 신나고 재미있었다. 경상도와 충청도를 다 볼 수가 있었다. 단양은 영주와는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자동차 여행에선 느낄 수 없는 것들이다. 자연환경도 다르고 말소리, 인심도 다르다. 어떨 때는 새소리, 바람 소리도 다르게 들린다. 각기 다른 것이 서로 양보하고 타협하고 화합해서 살아가는가 보다. 여행은 느낌도 좋지만 가끔 이런 깨우침을 가져다준다.

죽령은 차가 많이 다니지 않아 자전거로 여행하기에 딱 좋은 곳이다. 내려올 때는 그렇게 내리쬐던 햇살도 힘을 잃었다. 마음이 너그러워지니 덥지도 힘들지도 않았다.

여행을 마치고 갈 때면 항상 이렇게 아쉬움과 미련이 남는다. 그래서 다시 떠나는가 보다. 다음 여행 때는 자전거가 아닌 도보로 죽령 옛길을 걸어 보고 싶었다.

윤혜정(자전거타기운동본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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