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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강 김영자 서예전…서예의 일탈? 서예의 진화?

'명심보감'
'연꽃 처럼'

세간에 서예 인구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푸념이 있다. 이십여 년 전만 해도 서예작품 전시도 많았고 서예학원들도 성시를 이루었다. 요즘은 서예학원도, 서예를 배우려는 사람도 많지 않다. 이런 현상에 대해 서예가들은 "세월은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서예는 여전히 전통적 방식을 고집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때에 서예와 민화, 서각을 결합한 서예작품 전시회가 있어 눈길을 끈다. 20일부터 25일까지 봉산문화회관 1전시실에서 열리는 '제11회 설강 김영자전'은 전통 서예의 흑백과 민화의 화려한 색상, 서각의 입체미를 결합한 일탈이다.

김영자 작가의 서예작품은 흑백의 단조로운 색조와 평면성을 거부한다. 1988년 대구미전을 통해 서단에 나온 작가는 2000년부터 전통서예에 현대적 미감을 조금씩 이입하기 시작했다. 2005년부터는 전통적인 예서를 중심으로 하되 문자를 비틀어 새로운 조형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이것도 모자라 회화기법을 서예에 도입했다. 색채를 넣기 시작한 것이다. 이 같은 작가의 실험에 대해 당시 서단은 "이것은 서예가 아니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흑백의 서예작업에 색조와 입체감을 불어넣기 위해 작가는 민화의 원색성과 서각의 입체감을 동원한다. 민화의 강렬한 채색으로 한국인의 고유한 정서를 자극하고, 서각의 입체감으로 조형미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른바 장식성이 가미된 한문서예이다.

작가는 "한문이 이미 현대인의 일상에서 멀어진 지금에도 여전히 옛날의 미학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 한문서예의 의미를 그림으로 나타내자는 것이 내 작업의 의도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녀의 작품에서는 민화가 글씨보다 더 중요한 위치를 조금씩 차지하더니, 2009년부터는 민화가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민화가 객으로 은근슬쩍 구석자리에 앉는가 싶더니 어느새 주인 노릇을 시작한 것이다. 원래 주인이던 서예작품은 민화의 이야기 내용을 표현하는 형식이 되어버렸다.

이 같은 작가의 실험은 아직 많은 숙제를 안고 있다. 서예와 민화의 조합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어느 수준까지 해야 할 것인지…. 현대인의 시선을 끌면서도 서예의 범주에 머무는 작품을 구현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의 서예 범주를 지켜야 하는지도 큰 숙제다.

김양동 계명대 석좌교수는 설강 김영자의 실험에 대해 "서예, 민화, 서각의 결합에서 설강은 아직 서예에 의미를 더 두고자 하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이는 장점일 수도 있고, 장애가 될 수도 있다. 세 가지 장르의 결합에서 초래되는 마찰과 충돌을 더욱 대립시켜 이미지를 강조할 것인지, 멋지게 조화시켜 새로운 경지를 열어갈 것인지 작가가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영자 작가의 이번 전시는 충돌과 마찰, 부조화와 낯섦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053)661-3081, 010-6533-2613.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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