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느리게 읽기] 광기에 맞선 고독한 인문주의자 '에라스뮈스'

에라스뮈스/ 요한 하위징아 지음'이종인 옮김/ 연암서가 펴냄

인류 문화 속에서 놀이가 수행하는 역할을 다룬 '호모 루덴스'와 중세 유럽의 문화와 사상을 집대성한 '중세의 가을'로 널리 알려진 요한 하위징아가 쓴 에라스뮈스 평전이다. 저자는 에라스뮈스에 대해 광기로 얼룩진 중세의 혼란 속에서 자유와 평화를 지키고자 애쓴 고독한 인문주의자라고 했다.

에라스뮈스의 삶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알아보자.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뮈스는 네덜란드 로테르담 사제와 의사의 딸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그런 출생의 불우함을 딛고, 학문의 길에 매진해 후일 북부 르네상스의 가장 중요한 인물이자 유럽에서 가장 저명한 지식인이 됐다. 그는 성경이든 세속 문헌이든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방대한 학식을 쌓아서, 유럽의 왕족들과 대학들이 그에게 자문을 간청할 정도로 학문적인 거목이 됐다.

꼼꼼한 조사연구와 아름다운 문장이 돋보이는 이 책은 에라스뮈스가 수도원의 일개 무명 수도사에서 당대의 저명한 휴머니스트로 탁월한 역할을 하고, 또 종교개혁의 중심 인물로 부상하게 되는 과정을 세세하게 파헤치고 있다. 저자는 에라스뮈스의 삶에 대해 ▷불우했던 청소년 시절 ▷순회학자로서의 고단한 삶 ▷토머스 모어와의 우정 ▷마르틴 루터와의 신학적 논쟁 등으로 나눠서 전달하고 있다.

이 책에서 에라스뮈스의 개인적인 성격이나 생각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너무 신경 썼고, 하고 싶은 말을 잘 참지 못했다. 생각이 워낙 많았고, 또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논증, 사건, 사례, 인용을 불필요할 정도로 많이 제시했다. 또한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냥 내버려두지 못했다. 평생 휴식하며 명상할 시간을 자신에게 부여하지 못했고, 그래서 주변의 소란스러움이 결국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명상할 기회가 없었다.

에라스뮈스처럼 불안정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허약한 체질이면서 폭풍우 속으로 뛰어나가는 측면도 있었다. 의지력만큼은 당대 최고였다. 그는 엄청난 신체적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눈앞에 위대한 이상을 좇아서 밤낮없이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결코 자신의 업적에 만족하지 못했다.

이 책의 구성은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부터 수도원 시절, 대학 시절, 해외 체류 시절, 종교개혁 초창기 시절, 말년 시절 등 에라스뮈스의 평생을 담고 있다. 총 21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제21장 결론은 에라스뮈스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와 긍정적인 평가, 종교와 정치에 미친 영향을 정리하면서 마무리하고 있다. 472쪽, 1만8천원.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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